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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2
오늘, 딱 하루만 진행한다고 했던 전시가 하루 더 연장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소식을 봤을 때 운이 좋다고 느꼈다. 전시에 가고 싶었는데 안 갔으니까. 늦게 잠든 탓인지 일어났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전시장까지 가려니 막막했다. 거기다가 밖에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가봤자 큰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천장에 던지고 있었다. 생각도 중력을 받는지 내 얼굴로 다 떨어져서 너덜너덜해진 얼굴로 잠깐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몸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 이미 시간은 오후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깔끔하게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으로 전시 사진이나 보려고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 연장을 결정했다는 문구가 떠 있었다.
비는 그쳐 있었다. 구름 없이 맑은 날이었다. 바람도 크게 불지 않았다. 나무가 만든 그늘을 부수고 들어오는 볕의 모양새를 카메라로 담았다. 당근해서 산 카메라는 벌써 오 년 정도 되었다. 산뜻하고 쾌활한 기분으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어제 무리해서 가지 않아서 오늘 전시를 보러 가는 일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관람객은 나뿐이어서 여유롭게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작가님이 전시장에 계셔서 혼자서 작품을 보고 있으니, 작가님이 설명도 곁들여주셨다. 그냥 봤을 때보다 더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들어 잘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 확인하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다. 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마주한 건물의 높이와 전시장이 만들어낸 벽의 기울기 덕분에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적당하고 아름다웠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전시장에 머물렀다.
전시장은 원래 카페로 이용되는 곳이었는데, 전시가 진행되는 날은 음료와 음식을 가지고만 갈 수 있었다. 빵과 커피를 들고 나와도 아직 저녁이 오려면 꽤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근처에는 공원이 있었다. 벤치가 꽤 많은 공원이었다. 목줄에 묶인 개가 주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을 묶은 목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주인은 못 이기는 척 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다. 벤치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오래 앉아 있어도 좋을 만한, 그늘이 적당하게 퍼진 자리를 찾은 그가 부럽기도 했다. 커피와 빵을 먹기에 완벽해 보이는 자리는 이미 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그늘을 포기하고 적당히 사방이 트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빵에 녹아 있는 기름기가 책장에 묻지 않게 주의하면서 야금야금 빵을 씹어 먹고, 커피를 마셨다.
뭔가, 행복하다는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이날에 붙여두고 싶었다.
다행스러웠다. 행운은 행복과 겹치곤 하지만, 다행과 더 가까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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