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제목
제목 - 비록 : 悲錄
“현주이!!!!”
흐릿하게나마 보이던 현준의 형체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우석은 놀라 소리쳤다.
해가 가장 길다는 6월이었지만 대구에서 두번째로 높다는 비슬산의 어둠은 산길을 내려가던 현준과 그 친구들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날은 6월 모의고사 날이었다. 현준과 친구들은 일찍 마친 김에 여름방학동안 놀러올 계곡을 찾아본다며 자전거를 타고 비슬산으로 달려간 것이다.
”끼이익- 턱 턱, 턱턱“
현준이 쓰러진 주위로 뒤따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현준을 우선 갓길로 옮겼다.
“현주이! 현주이! 정신차리라! 개안나?”
그 소리에 눈을 뜬 현준이었지만 아직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왜 누워있지? 여긴 어디지? 다리가 아프네. 그러고 보니 팔은 따갑고. 뭐지?..? 계곡… 어? 우석이네, 아! 비슬산에 계곡보러 왔었는데.?! 응?’
생각이 그쯤 이어지자 현준은 쓰러지기 직전 상황이 떠올랐다.
현준은 가장 앞서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힘겨운 오르막길이 끝나고 내리막길이 시작되자 ”내리막길이다!!“란 짧은 외마디 소리침과 함께 쏜살같이 내려간 것이었다. 지겹게 오르막을 오르느라 터지기 직전이었던 허벅지와 스트레스로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게 스피드를 즐기던 현준은 반대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향하는 헤드라이트에 눈이 잠시간 멎는 게 가장 거슬렸다. 하나의 불안이 시작되자 두려움은 현준의 머리 속에서 하나둘 피어 났다.
‘와, 그러고보니 속도가 너무 빠르네. 이거 속도가 빨라서 핸들을 많이 꺾을 수가 없네. 우오오…… 이거 좆되겠는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현준의 자전거는 커브길에서는 가드레일에 거의 부딪힐뻔 하며 겨우 겨우 코너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빠르게 잡을 수도 없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간 바로 미끄러질 것이 뻔했다.
’우선은 반대편 차들이 나를 보게 해야겠어. 왼쪽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으니 핸드폰을 꺼내 후레쉬를 켜야겠다. 그리고 오른손으론 살살 브레이크를 잡아야…‘
그것이 현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쓰러진 현준을 우석과 친구들이 일으켜 세웠을 때, 현준은 오른쪽 어깨 쪽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는 아스팔트에 쓸려 거의 전체가 다 까져서 피가 나 쓰라렸다. 어깨와 팔 다리의 통증으로 머리에 있던 상처는 병원에서 의사가 발견해주기 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던 현준이었다.
까딱했으면 죽을 뻔 했던 그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던 건 두돌이 갓 지난 아들이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그날 우리 아빠는 왜 오지 않았을까.‘
다 부서진 자전거를 질질 끌며 현준은 홀로 어두운 집으로 들어왔다. 친구들이 데려다주려 했지만 이미 늦어진 시간에, 집이 다른 방향이기도 했기에 현준은 애써 애둘러 친구들을 집으로 보냈었다. 10대 남학생의 괜한 자존심도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아빠, 나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어”
아내와 이혼을 한 뒤, 현준의 아빠는 홀로 현준과 현준의 누이를 보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바쁜 회사 생활과 이혼 후 찾아온 헛헛함에 새로 생긴 애인까지,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현준의 누이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녔기에 집에는 언제나 현준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자전거 사고가 난 그날도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냐? 병원은 안갔고”
내심 놀란 목소리로 현준의 아빠가 물었다.
“일단 집으로 왔는데 어깨가 좀 많이 아파서 병원 가야될 거 같아”
“혼자 갈 수 있겠나?”
“… 어. 택시타고 가면 될 거 같다”
“그래, 뭔일 있음 전화해라이”
.
.
“읏챠. 괜찮아 아들. 어디보자. 어디 아야했어?”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현준은 아들이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이 태어난 뒤, 아들에 대한 사랑이 커져갈 수록 현준의 마음 한 켠엔 알 수 없는 쓰라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응급실로 걸어가던 어린 현준의 마음 속에서 가족의 사랑이란 단어는 그날 완전히 지워졌다. 엄마아빠의 이혼으로 안그래도 옅어져 가던 것이었다. 한번 지워진 그 자리에서 이따금 지우개똥 같은 것이 생겨났으나 현준은 언제나 그 자리를 수십번 수백번 어설픈 이해라는 것으로 덮곤 했다.
그렇게 지워진 줄로만 알았던 가족의 사랑. 가족애란 것이 다시 피어난 건 아들이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아빠로서의 현준과 아들로서의 현준, 둘 사이에서 '가족의 사랑' 은 전혀 다르게 현준에게 작용하고 있었다.
‘아들이 다쳤다는 데 와보지도 않는다고? 그게 가능해?’
언젠가 현준이 아빠에게 그날의 이유에 대해 물어봤을 때, 현준의 아빠는 니가 안와도 된다고 해서 큰일이 아닌 줄 알았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곤 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의 현준은 그 말을 어느정도 이해했다. 가족의 사랑이란 것이 지워지고 나니,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다.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순간마다, 그것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던 현준은 언제나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그 상황들을 이해해 나갔다. 그러지 않고 사랑을 찾고 울부짖는 것이 그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현준은 가족애란 단어를 지워버린 채 이성의 영역에서 가족들을 머리로 이해해가며 살아갔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생겼고, 가족의 사랑이란 것이 다시 마음에 피어 올랐을 때, '가족' 사이에선 이성이란 것이 없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아들이 산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기절하며 몸 여기저기를 다쳤고, 그 몸을 이끌고 응급실을 가야한다는 상황을 전해들은 아빠가 아들에게 와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빠가 된 현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라면, 나였다면 그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뿌리치고 달려올 것 같은데..'
돌아보면 부모의 이혼 이후 현준의 인생 자체가 그랬다. 모두가 다 각자의 사정만을 우선시 했을 뿐, 집에 홀로 남아 있는 10대 막내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 시절을 어둠으로 보낸 현준에게는 '그럴 수 있지 뭐' 라는 식의 어설픈 이해마저 없었다면 그 암흑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만큼 위태롭던 시기였다.
수많은 가족애가 필요했던 순간들 중에서, 아들이 넘어진 그 순간, 가장 상징적인 자전거 사고의 순간이 현준의 머리 속에서 피어난 것이다.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은 것이야.'
현준은 점차 그렇게 결론을 내려가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 발전의 시기를 관통한 가부장적인 우리네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늘상 하는 변명이 있다.
“나는 부모로부터 더 받은 사랑이 없어~ 받은게 없으니까 어떻게 너네들에게 주는 지를 몰랐어~ 그건 너네가 이해해줘야해~”
현준은 이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경멸했다. 자식이 생기자 더더욱 말이 안된다 생각했다. 본인이 못 받았기에 나는 줘야겠다라는 생각이 현준은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저 치들의 말대로 받지 못했기에 주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전해준 자들에 의해 세상은 계속 발전해온 것이다.
저 말은 그저 비겁한 자들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다. 본인의 못남이 드러나는 것을 도저히 못견디는 소인배들의 자기 합리화였다. 치졸했으며 못난 소리였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들이 못난 소리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18.3매)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