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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청의 병사들이 쳐들어왔다. 한양은 함락됐다.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숨었다. 산성은 청군에게 포위됐다. 식량은 모자랐고 병사들은 손발이 얼었다. 병장기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화승총의 총열은 휘었고 가늠자와 가늠쇠는 비틀어져있었다. 창검은 녹슬었다. 병자년 12월부터 정축년 1월은 몹시 추웠다.

성첩에서 군역을 하는 천민 중에 서흔남이 있었다. 그는 쇠를 깎던 대장장이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인조에게 그를 부려 병장기를 고치도록 할 것을 청했다. 서흔남과 장정 몇이 성첩에서 내려와 병장기를 수리했다.

그 후, 원두표가 군사들을 이끌어 청군 6명을 죽였다. 이틀 뒤엔 신경진이 이끄는 군사들이 청군 30명을 죽였다. 예조판서를 비롯한 척화파들은 기뻐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인조는 전승을 치하하며 수어사 이시백에게 술을 하사한다. 이시백은 호조판서 최명길과 술잔을 기울인다. 그들은 어릴 때 동문서학 했다. 둘은 영의정 이항복의 문하생이었다. 술은 한병밖에 없고 안주는 삶은 무채뿐이다. 밤바람은 혹독하다. 그날 최명길은 청과 화친을 주장하다 목을 베란 상소를 들었다. 그러나 군영에선 농담과 웃음이 이어진다. 그들은 이 행복감이 찰나인 것을 알고있다.

술자리가 끝나고, 김상헌이 미소 지으며 군영을 나섰다. 이시백은 포위망이 늘어나는 게 염려되었고, 김상헌은 창검이 말의 길을 자를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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