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무
나무야. 어떤 꿈을 꾸었냐면, 황금빛 천변을 나무와 걷는 꿈. 그것 말이야, 유일하지만 연속적인 나무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도. 실은 대개 다정했어.
나무와 손잡고 거니는 일은 꽤 나쁘지 않다.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계속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거든.
어떤 가지. 실낱같은 줄기까지도.
이런 말을 할 때, 우리는 잔디밭 벤치에 누워 있었고. 너는 말했어. 하늘을 보면서.
너는 광활해. 뭐든 껴안을 수 있을 것 같아. 신도 너한테 빌 만큼 높고 넓어.
나는 이 말을 더는 늘어나지 않을 만큼, 늘어지고 늘어질 만큼 늘어난 테이프처럼 감아 들었어. 사라진 날개 대신, 날개뼈에 너의 말을 새기면서.
*
너는 모르겠지만.
*
무엇을 줄 수 있어? 다 꺼내줄 수 있다는 말만큼 새하얗고 반짝이는 거짓말이 또 있을까. 심장을 내주겠다는 인간들 말, 그것 다 은유였잖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인간의 사랑이라면
너에게 투명한 심장을 건넬게. 나무야.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을.
인간을 사랑해서 천사이기를 포기한 천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투명한 심장. 심장만큼 투명해지는 이름.
나무야.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고 믿을 뻔했어.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사랑과 연민이 헷갈릴 수 있는 명제야?⁺ 나는 사랑만 배워왔거든. 너에게 희고 투명한 것만 줄 수 있거든.
*
거대한 숲에서
하나의 나무에 정확히 내리꽂히기.
나뭇잎의 수를 집요하게 세는 것,
나뭇가지를 꺾지 않는 마음.
나의 세계 중간에 너를 옮겨 심고 싶어.
나는 처음 태어났어.
너의 흔들림 속에서
•
깨지는 것을 조심해. 더는 천사가 아니잖아.
•
활공하던 감각. 바람을 안는 것 같았다. 나무처럼. 츠츠츠츠 흔들리던 나무의 꼭대기처럼. 나무 중 가장 나무처럼.
나무야. 그건 추락이었을까? 손잡고 마지막으로 바람 같았을 때. 나는 이미 날개가 없었는데. 그래도 살아 있었는데.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천변을 인간처럼 걷는 꿈. 날개를 접지 않아도 누울 수 있던 꿈속의 꿈.
그 속에서.
빛이
투명한 심장을 관통한다.
숲 바깥에서 숲속
하늘에서 땅
천국에서 나무에게로 옮겨가는 일.
*
나무야.
다시 날개가 돋을 것 같아.
*
어쨌든 우리는 바람의 형태가 어울려.
나무가 말했다.
나는 너를 나무라고 부를게.
나무는 말한다.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