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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커다란 전시장. 천장은 높고 벽면은 아무것도 없는 흰색이다. 회색 바닥의 정중앙에 밋밋한 나무 사각 테이블이 놓여있고 나무 의자가 마주보여 놓여있다. 한 쪽에는 몸에 꼭 맞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검은 머리를 한갈래로 묶어내린 서양인 중년 여성이 앉아있다. 그녀는 마치 전시당하는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4~6m의 거리를 두고 사방으로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다.(그들은 또한 모두 다 동양인은 아니다.) 모두 다들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무리 중에 있는 어린 소녀는 팔짱을 끼고 어른들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희끗희끗한 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은색 안경을 이마 위에 얹은, 흰 수염이 난 어떤 남성이 결심한듯이 중앙으로 걸어간다. 그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의 맞은 편에 앉아 옷 매무새를 정리한다. 구경꾼들로 부터 카메라 플래시가 짧게 한번 터진다. 붉은 옷의 여성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으로 상대방을 확인한다. 미소를 잘짝 짓고는 눈을 다시 내리는 그녀.

서정적인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첼로의 떨리는 음색이 추가된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남자는 알수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인다. 그녀는 슬픈 감정을 표출한다. 침을 삼키고 눈을 깜빡이고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남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여자는 탁자위로 양손을 내밀고 남자는 그 손을 잡는다. 그는 어떤 말을 하지만 주변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둘은 한참이나 손을 잡고 있다. 여자가 손을 먼저 거둔다. 남자는 미련이 남은 듯 탁자위에 손을 잠시 더 머무른다. 그리고 떠날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건지 미련없이 일어서서 뒤로 돌아 나간다. 아까보다는 작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한번 더 들리고,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추스린다.

이번에 감정을 추스리는 것은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사이 몇몇의 관객들을 그녀 뒤를 지나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는 그녀. 그녀 앞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앉는다. 그녀는 차분한 눈 빛으로 다시 맞은 편의 사람을 바라본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보인다.

(5.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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