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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웃

< 그 집들이에서 >

주변인에 대한 질투.
본래 질투는 남을 끌어내린다. 상대가 나와 같은 곳에 서있도록.
질투는, 남이 괜찮은 계획이라도 세우면,
네가 할 수 있겠어?와 같은, 부정적인 낯빛으로 드러난다.
조언의 낯빛을 한 질투.
그것을 조언으로 받아들인 상대는 낙담한다. 다시 나와 같은 곳으로 돌아와 선다.
그때 질투는 제 임무를 다한 것이다.

그러나, 질투가 짓누르는 대상은 상대가 아닌 내가 되기도 한다.
남이 '이미 이룬 것'을 맞닥뜨릴 때.
나 이번에 결혼해, 나 행복한 가정을 이뤘어.
그랬구나, 벌써 이뤘구나, 어떻게 했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네가 앞서있구나.
그 질투와 부러움은 나를 짓누른다.

친한 동생 S, 그는 나보다 먼저 결혼했다.
결혼 후 묵묵히 일한 그가 집을 샀다.
들뜬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S네 부부와 치킨과 맥주를 곁들이며 떠들다 문득.
창 밖에 내다보이는 신천.
그 위 빛의 안개 속, 반짝반짝 야경을 이루는 차와 건물들.
작지만 별이 보이는 옥상 테라스.

S의 새 집에 대한 부러움은, 그 안의 것에 대한 부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S와 제수씨, 그리고 둘을 닮은 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살아가겠지.
앞으로 족히 십년은 그 아이들을 키우느라 부부가 바쁘게 손발을 맞추겠지.
아이가 울어도, 부부가 싸워도,
그들은 그 집에, 서로에게, 묶여있다.

함께 술이나 퍼마시며 놀던 친구가, 언제 이렇게...

질투가 나를 짓누른다.

몇 주전 친한 동생 S의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전셋집 이사를 몇 번 하며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집을 넓혀오던 S와 제수씨는 기어이 집을 샀다. 신축이 아니라 구축이고, 아이 생각까지 하면 조금 좁다며 아쉬운 점을 늘어놓는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은근하게 미소가 자리잡혀 있었다. 그 미소를 숨길 수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화장실부터 안방, 옷방, 손님방까지 둘러보고 좁은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 옥상의 작은 테라스까지 둘러봤다. 테라스에서는 한여름이 되기 전에 여기서 고기를 구워 먹자는 말을 나눴다. 좀 더 밤이 되면 여기 별도 잘 보인다고. S의 말대로 날이 맑으면 별이 제법 잘 보일듯했다.
주문했던 치킨이 도착해서, 거실에 있는 상에 둘러앉았다. 나와 같이 집들이에 온 친한 누나 D는 연신 진짜 살기 좋은 집 같다는 말을 S에게 전했다. 나도 거들었다. 올 때 보니까 주변에 병원이나 음식점도 있고,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도 가깝다고. 대화는 크게 걸리는 것 없이 이어졌다. 적당히 무례하고 빤하게 웃긴 표정을 짓고 한껏 시시껄렁하게 굴었다. 친한 사람끼리 술을 마실 때 생기는 특유의 편안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다 누군가 저기 창밖을 좀 보라고 했고, 우리는 일제히 창밖을 봤다. 차도 위로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신천 위로 깔려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난 직후라 그런지 빛과 건물이 한데 어울려서 경계가 뭉개진 것처럼 보였다. 야경 죽이네. 이게 한강뷰 아니냐? 이런 말들을 툭툭 던지고 다른 이들은 다시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난 꽤 오랫동안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개봉한 지 20년이 넘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양복을 차려입은 이병헌이 창 너머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섀도복싱을 한다. 야경과 이병헌의 모습이 번갈아 페이드 아웃과 인을 넘나들며 겹쳤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외로워졌다. 나는 이병헌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지. 왜 외로워졌는지 자문하기 전에 영화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한 장면인데, 왜 지금 다시 떠오를까. 나는 이병헌이 아니다. S도 이병헌이 아니다. 그저 삶에서의 어떤 장면은 당장 해석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 해석된다는 답을 나 혼자 내렸다.
이제 S는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너무 단언인가. 그런데 S와 제수씨가 차근차근 원하는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지금까지 지켜봐 와서 이 단언이 성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기 전에 두 사람을 닮은 아이가 그 외로움을 후딱 쫓아버릴 것이다. 둘일 때 투닥거리고 셋이되면 더 재밌게 투닥거릴 것이다. 난 이런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제 진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진짜 축하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불쾌하게도 S가 이뤄낸 이 행복이 꼭 S가 잘해서 이뤄낸 게 아니란 생각에 S를 속으로 깠다. 나보다 더 부유한 집안이긴 하지. 제수씨를 만나지 못했으면 이렇게는 못 살지.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고 술 많이 퍼마시잖아. 이 마음이 동시에 튀어나와서 그 무엇도 진심이 아닌 것 같았고, 이 모든 게 다 진심 같기도 했다. 내가 살다 살다 S를 질투하고 있을 줄이야. 한 사람에게 전념하고, 같이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S에게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쪽팔렸다. 알게 모르게 S를 얕잡아보면서 알량하게 그래도 내가 너보단 낫다고 자위하던 내가. 부러웠다. 어렵고 막막해 보이는 행복한 가정 꾸리기를 S는 이미 묵묵히 해내고 있는 듯해서.

(12.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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