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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웃
주제
커피 앤 시가렛. 피트 위스키에 깔루아, 베르무트, 앙고스투라 비터를 섞는다. 불 붙인 시나몬 스틱이 잔 위에 걸쳐져서 나오는 칵테일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 다 때려넣은 재료라면 분명 내가 싫어할리가 없다. 시나몬 스틱 끝에서 담배마냥 연기가 피어오르고, 주변으로 향이 퍼져나간다. 조금 부끄러워진다. 사실 이렇게까지 멋있는 술인지는 모르고 시켰거든요.
망설이다 시나몬 스틱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고정해서 마셔본다. 계피향이 은은한 약 냄새, 달달한 부재료와 어우러진다. 또 좋아하는 술을 찾아내고 말았구나.
특히 혼술은 내가 잠시 나사를 풀어놓는 얼마 안되는 시간이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이 긴장 상태인 나는 그 상태를 즐기기도 하지만 가끔 풀어질 때도 필요하다. 명상을 통해 풀어지는 것도 있지만 가끔은 조금 덜 단정하게 흐트러지고 싶은 때도 있다. 물론 안전한 나만의 공간에서. 그런 만큼 내가 먼저 술을 먹자고 하는건 타인에게 다가가 보려는 큰 결심이기도 하다. 술 먹으면서 친해지는게 아니라, 친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에게 나를 조금 풀어놓기 위한 도구 같은거.
그리고 술에서 맛을 느끼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하다못해 소주도 맛이 다르다. 그 말에 갸우뚱했던 친구들에게 참이슬과 참소주를 블라인드 테스트한 적도 있다. 참이슬이 맛있지? 이제 내 친구들은 나를 만났을 때 참이슬만 먹어야 한다. 그후 내추럴 와인과 위스키에 빠져 살림살이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보기보단 기분 내고싶은 소중한 날에 고심해서 고르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게 늘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남들은 같이 마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혼술이었던 시절도 있다. 스무살이었다. 지금은 MZ세대에 묶이는 연령들이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이 MZ로 분류되도록 행동하진 않았던 애매한 시절이었다. 특히나 리더십이 필요한 학과에 다녔기에 집단주의 압력은 더 강했다.
쭉 혼자 있기만을 원했던, 아니면 내가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보기를 원했던 시간은 오지 않았다. 그때 마셨던 소주는 인생의 쓴 맛처럼 느껴져서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웠던 시절이다.(물론 상황은 지금봐도 전혀 귀엽지 않다) 공교롭게도 패잔병들이 하나둘 실려가고 모임이 파할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몸뚱이로 타고났음을 알게 됐다. 그 긴 시간동안 나는 술을 마시면서 어두컴컴한 술집 벽 귀퉁이에 걸린 그림이나 달력을 바라보았다.
더 씁쓸한 혼술의 시간도 있었다.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겠다며 1년을 넘게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서는 방에 들어간다. 부모님에게 티내고 싶진 않았다. 가방에서 기다란 맥주 캔이 나온다. 세상 망해버려라, 아님 세상은 원래 이런거야 싶은 냉소적인 영화를 보며 술을 마셨던 날들이다. 안타깝게도 퇴사는 못했지만, 생활은 좀 나아졌다. 그때처럼 도피하려고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지금은 건강하게 더 오래, 그리고 더 맛있게 즐기고 싶은 일념 하나로 적당히 마시는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일드 ‘반주의 방식’을 보면 주인공은 정시퇴근 하자마자 정해진 시간만큼 사우나를 하고, 정성껏 요리를 해서 맥주를 마신다.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그동안 물을 한모금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독하게 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두 개의 술잔을 냉동실에 잠시 넣어두는 꿀팁은 익혔다. 첫번째 잔이 미지근해지면 다음 잔이 나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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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한 글에서 술(칵테일) 예찬하신 글을 따라 한번 써봤어요.
이렇게나 술을 좋아하면서 현장에서 쓸 때는 왜 영화 감독들이 줄줄 떠올랐을까요.
그러고보니 술을 마시면서 영화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네요.
갑작스럽게 주제를 받아들고 1시간 만에 현장에서 쓴 ‘좋아하는 것들’이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물론 오늘도 집에서 한잔 하고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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