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박카스

요즘 내 탐구 대상 1위. 나의 과외돌이이자, MZ세대 고3이자, 나랑 6살 차이가 나는 혈육이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시장이 반찬이다’가 뭐냐고 물으면 그런 경제 용어는 잘 모른다고 답하는 놈에게.
'새 조(鳥)'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쇄하다'가 그냥 없애다랑 뭐가 다른지, '박하다'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놈에게.
MZ는 다 이런걸까? 반에서 나름 1등이라는 놈이 이렇게 어휘력이 떨어질 수가 있나.

나는 과제를 직접 써냈지만, 동생은 수행평가가 있으면 챗지피티와 함께 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코로나를 겪었고, 동생은 중학교 1학년 때 코로나를 겪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쯤 처음 스마트폰을 가졌고, 동생은 일찍부터 유튜브와 게임에 푹 젖어 살아왔다.

이런 자라온 시대의 차이(고작 6년이지만 시대가 빨리 변했다)를 탓해본다.

0개 국어를 하는 19살 동생에게, 국어 단어와 뜻을 함께 적은 노트를 만들어 외우게 시키고 있다.

각설하고. 직접 시를 잘 고를 자신이 없어 말이 길어졌다.
내가 고른 시 대신, 동생이 국어 글쓰기 수행평가를 위해 고른 시가 있다.
수행평가로 써낸 글을 보니, 이 시를 읽고 나서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진지한 시를 골랐다. 대학 면접관들에게 멋져보이고 싶었나.
내가 이 시를 이해할 때 도움을 받은 <보기>와 함께 시를 옮겨 적어보겠다.


<보기>
개인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동력은 자아를 탐구하는 행위를 통해 확보할 수 있으며 그러한 행위는 자아의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시는 이러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삶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부터 벗어나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한 화자의 의지와 노력을 나타냄으로써 '자아 탐구의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 생명의 서 . 일장

음. 동생이 고3이라 인생이 고달파서 이런 시를 고른걸까. 이 시의 비장하고 의지적인 어조에 반한걸까.
아님 챗지피티랑 수행평가로 무슨 시를 써낼까 고민하다가 이 시의 주제의식이 뭔가 있어보여서 고른걸까.

동생이 면접관들의 질문 앞에 밑천을 드러내지 않길 바라며, 이 시를 보고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그를 면접관들이 장하게 여겨주길 바라며, 고3이라고 떵떵거리는(?) 저놈이 빨리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길 소망한다.

(7.3매)

1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