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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당부, 그대 발치에>_라이너 쿤체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혼자 와야만 하는 이
당신이 아니도록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집 '은엉겅퀴'에 수록된 시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 간결함이 품은 울림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 시를 여러 번 암송하면서 짧은 시임에도 리듬이 참 훌륭하게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시를 천천히 읽을수록 나는 언젠가 이 말을 하게 될 한 노인의 나이로 수렴되어가는 듯했다.
나도 라이너 쿤체처럼 아흔 살의 할아버지가 되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기대해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시는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언어의 응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시 쓰기를 지향하는 나도 시를 쓸 때 솔직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만, 종종 시쓰기가 불순해지고 늘어질 때면 이 시를 생각한다.
누군가의 시 하나를 내 것으로 훔칠 수 있다면 이 시를 고르고 싶다. 그만큼 나는 이 시의 정수를 담아보려고 애쓰기도하고 일부러 시를 짧게 해서 비슷한 느낌을 내보려고도 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쿤체 할아버지께 비교하기도 부끄러운 나의 시를 바치면서 글을 마친다.
<신발 밑창의 무늬>
신발 밑창의 무늬를 다 지우고
사라졌구나, 너는
길을 헤매다 시간을 다 지울
그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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