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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일란성 슬픔, 쌍둥이 슬픔> - 유선혜
정확히 같은 부분이 고장 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있지.
울면서 방문을 노크하는 너를 붙잡고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 수면으로 기를 쓰고 올라오는 기포처럼 밤마다 슬픔이 꼬르륵 찾아오는 이유를 묻는 내게 별다른 대답은 필요 없다는 뜻
네가 모르면 나도 모르니까
네가 고장 난 그곳이 나도 아파
이건 그냥 슬픔
그냥 똑 닮은 슬픔
슬픔이 끓어 넘치는 날에는 식탁에 모여 묵묵히 라면 봉지를 뜯고 척척 냄비를 올리지 우리는 겨우 잠든 신생아 같은 울음이 깨지 않도록 필담을 나눈다
우리가 웅크리고 있던 양수 속 기억해?
열 달 동안이나 우리가 익어가던 물속
하나의 난자가 두 명의 인간으로 부글부글 분열하던
그게 라면 국물이었다면 정말 좋았겠다. 라면에 넣은 계란 노른자였다면 정말 좋았겠다
그럼 다 먹어버렸을 텐데
식탁에 튀기면 마른행주로 다 닦아버렸을 텐데
우리는 라면 앞에 둘러앉아 침묵 속에서 불어터진 글자로 이야기한다. 너의 글자는 돋움체를 나의 글자는 바탕체를 닮아 있지만 우리가 견딘 하루의 내용은 정확히 같고
너는 슬픔을 각주로 달고 나는 슬픔을 미주로 달지만 우리의 눈물은 정확히 같은 온도에서 끓어오르지
둘만 아는 치료
둘만 아는 위로
면발이 식도에 들어찰 때까지 라면을 먹는다 화학물질이 뇌에 들어닥칠 때까지 모아둔 알약을 쪼개 먹는다
너를 위해 처방된 진정제를 내가 나를 위해 만든 라면을 네가 너를 위해 사 온 라면을 내가 나를 위해 조제한 수면제를 네가
와구
와구
각자의 방으로 자러 가야 할 때가 오면 우리는 정확히 같은 환영을 본다 너는 그걸 괴물이라 적고 나는 그걸 허기라 적지만 우리의 묘사는 정확히 같다 추운 밤에도 펄펄 끓는 것 손을 가져다 대면 너무 뜨거워 얼른 뒷걸음질치지만 꼭 자꾸 아른거리는 가물거리는 그것 밤마다 자꾸 욱여넣고 싶은 그것
먹다 남긴 라면처럼
식으면 두 배로 불어나는 슬픔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일란성 슬픔 쌍둥이 슬픔
이게 모두 거짓말이었으면 좋았겠다
그치?
<이유>
기분을 마십니다. 질리는 맛입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 입니다. 이해와 인정입니다. 제가 받은 것에 그는 없었습니다. 언제나, 무언가 빠진 사랑. 누구한테서? 가까운 가족한테서.
안녕, 가족들. 사랑합니다. 사실 억울합니다. 평범함을 말하셨지요. 맞습니다. 저는 지구 아래 평범입니다. 아닙니다. 가족 아래, 별종입니다. 예민해지지 말라며, 피곤하다 그러셨지요. 평범해지라셨죠. 평범에게 평범을- 이상합니다. 미워하지 마세요. 저는 평범한 ‘척’을 잘한답니다.
하지만 억지로 맞춘 것, 편안은 없습니다. 친구의 세계, 그마저 별종으로 마무리. 오, 오, 오… 그렇습니다. 편하지 않답니다. 아, 아, 아… 울고 싶었습니다.
’불어터진 것들로 나누고, 대화하고, 바라보고, 안아보자.‘
듣고 싶습니다. 말해주실래요? 똑닮지 않으면 비참하답니다. 저 시처럼, 시시콜콜 슬픔 꺼내며 낙담합시다. 어떻습니까.
텍스트로 위로받기도 지칩니다. 사람에게 듣고 싶습니다. 어제도, 불어터진 라면 먹었습니다. 울면서 욱여넣었습니다. 나오는 것들, 면으로 눌렀습니다. 맞아요, 어제 울었습니다. 많이 싸웠거든요. 누구랑? 비밀입니다. 말할 수 있는 하나, 저 또한 그들에 있습니다.
얼마 전, 신점에서 말하더군요. 그 슬픔 안에 당신만 있지 않다. 분명, 타인은 있다. 흐릿할 뿐이다. 포기하지 말라. 당신은 사랑받을 수 있다. 가능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이 시를 기억합니다. 첫 타인은 텍스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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