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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차가 빨리 식는 계절이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따뜻한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친구를 만나면 붙어 앉게 된다. 갑자기 관심없던 연애적 사랑을 상상하며 볼을 발그레하게 데우기도 한다. 바야흐로 고백하기 좋은 계절이다. 때마침 몇시간 후면 빼빼로데이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시린 마음을 흔들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밤거리를 홀로 걷는다. 빼빼로데이를 겨냥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를 지난다. 환한 조명 아래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이 외로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넌 애인도 없냐?'
'그러게 말이야.'
왠지 애인이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추위에 움추려 든 마음이 더 쪼그라 든다.
'둘이 걸어다니면 덜 춥겠지?'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혼자 쓸쓸한 마음이 되어 지나가는 이성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럴때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고백각이라도 잡게 말이다.
고백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것이었지만 요즘은 딱히 성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젠더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특정 성별이 먼저 고백해야 한다라는 당위가 희미해져가고 있다. 2024년을 사는 우리는 젠더와 상관없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든 고백할 수 있다. '무한 가능성'을 부각하는 사회에서 우린 왜 쉽사리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할까. 그건 누구든 할 수 있다고해서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백은 내 마음을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상대가 자신을 받아주길 바라는 의사표현이다. 문제는 상대방의 마음은 미지라는 점이다. 고백하기전에는 전혀 알 수없다. 그래서 고백은 분명한 목적성을 가진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백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게된다. 고백의 목적지가 상대의 마음이므로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다면 예상보다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고백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괜시리 고백했다가 영영 멀어지거나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릴 수 있어서다. 상대방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그만큼 고백은 활을 잡고 화살을 날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고백해보기로 마음 먹었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방과의 마음의 거리에 맞는 말과 표현방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한 모든 것을 실행할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모든 것이 딱맞게 준비되었다해도 적당한 타이밍이 중요하므로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고백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알수없는 마음의 상대방이 있어서 그러하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에 꽂힐때만 의미를 가진다. 고백의 이치도 이와 같아서 난 늘 고백각을 잡다가 멈춘다. 활을 멋지게 쏘아 명중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막상 활을 잡고 당겨보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몇번 활만 당겨보다가 마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니 추워도 쓸쓸해도 어쩔 수 없다. 더 두꺼운 옷을 껴입고 추위를 견딜 수 밖에. 고백보다는 그게 훨씬 쉬우니까.
*천용성의 보리차 가사 참조
(7.7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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