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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그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거 알지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해요
해봤자 아무도 안 도와줘
저 사람이 나를 죽였어요
그는 죽은 채로 한참을 있었다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나중에는 날짜를 세는 것도 잊어버리고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돌아가고
시간이 갈수록 너무 끔찍해서
내가 죽은 걸 아무도 모르길 바랐어
살이 있을 때도 살은 계속 살펴야 하잖아
더러워지면 씻고
상처가 나면 치료를 하고
하지만 죽었는데 어떡해
뼈는 희고 깨끗해서
나는 빨리 뼈가 되고 싶었어
그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한번은 이제 태어나나 보다 하면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가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한번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이리 도망치고 저리 도망치다가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나 했다
지난번에 태어났을 때는 불편한 게 너무 많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그래도 어떤 건 옛날이 그리워요
한번은 너무 금방 다시 태어나서
내가 살던 집이 생각이 나더라고
집에 가고 싶어서 악을 쓰고 울었지
그러면 엄마가 와서 젖을 물리고
나는 혀로 밀어내고
두고 온 사람이 보고 싶어서
울다 까무러치고
울다 까무러치고
그래서 그다음에는 너무 금방 다시 태어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그랬던 거지
한번은 한참을 죽어서 있다가
당신도 죽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함께 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었던 거
손을 잡고 걸었던 거
늙은 몸으로
젊은 몸으로
한 이불 속에 누워 있었던 거
옛날에 그는 지금과는 다른 여자였다
짙은 눈썹에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졌고
취미로 화분을 가꾸거나
지루한 시간을 잊기 위해 담배를 피웠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며
먼 곳의 소식을 궁금해하지만
가까운 이의 속내는 알고 싶지 않았다
섹스를 하더라도
대화는 하지 않는 방식
그는 지금과는 다른 언어로 말하고
좀 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사랑할 줄은 몰랐다
남자들이 그에게 사정하는 것이 좋았다
그는 지금 전쟁을 겪지 않아서 좋다
그는 지금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가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그는 꿈에서도 그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고
아까 죽였는데 왜 또 살아났는지
눈을 뜨자마자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길에서 여자가 강간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길에서 여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여자인 것을 확인하고
여자로 사느니 즉사하고 싶었다
그는 여러 번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한번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한번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파르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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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시인의 시, 파르카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식물원이라는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이 시는 여타 다른 시와 다르게 시의 내용이 다 끝나고 난 부분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 의도를 짐작해보셔도 좋겠네요.
전 이 시에서 보여지는 끔찍한 영원성이 좋습니다. 계속된다니. 이게, 계속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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