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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수요일 오후
내내 바람이 불었다.
네쪽으로
내어놓은 창문에는
세월처럼 빠르게
구름만이 흘러서 가고
이따금씩
행려병자의
먼 눈빛처럼
햇빛이
잠시 창틀에 머물렀다.
나는
네가 떠난 후
늘 그러하였듯이
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일과
더불어
나의 안부를 전하는 일을
긴긴 낮잠으로 대신했다.
구름은
무슨 정처없음으로
닿을 곳도 없이
흘러서 흘러서만 가는가.
그리고
햇빛은
무슨 애처로움으로
오후를 서성대다
저녁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가.
잠에서 깨면
창 밖은
어두운 겨울 들판
네가 떠나간 겨울 들판
차가운
적막과 적막
그 깊은 사이에는
내 외로움의
높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쑥쑥 소리도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최갑수 시인의 ‘오후만 있던 수요일’ 입니다
”나의 안부를 전하는 일을 긴긴 낮잠으로 대신했다“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안부를 전할까요? 분명 처음에는 슬퍼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부정했지 않았을까요.그 모든 과정을 겪고나서야
너의 안부를 묻고 나의 안부를 전하는 일을 긴긴 낮잠으로 대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세월처럼 빠르게 구름만이 정처없이 흘러서 가고
햇빛도 서성이다 애처로이 사라져갑니다”
이제 나한테 남은 건 뭘까 ?
어제는 네가 처음으로 꿈에 와줬다.우린 몇 마디 대화를 했는데 꿈에서 깨고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써 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우리의 시간이 비껴나 가고 너는 어떤 시간으로 가버린 걸까.나는 왜 이리도 느리게 가는 시간 위에 살아남아있는 걸까.너를 따라잡을 수는 있을까.
“잠에서 깨면
창 밖은 어두운 겨울 들판
네가 떠나간 겨울 들판” 뿐 입니다.
계절도 모르고
계속 이 구절만 입에 되뇌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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