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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4
“그저 주어지는 건 없단다.“
엄마의 말.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지.”
아빠의 말.
엄마아빠의 말을 먹고 자란 나는
”욕심내면 안돼, 그저 주어지는 건 없어.“
마음에 주문을 걸었다.
운에 기대지 않아야한다.
고 생각했던 이유는 뭘까.
’저렇게 큰 행운이 내게 올 리 없어.
내 일이 아니야. 내게 올거라고 기대하지 마.
저걸 욕심내면 다 잃게 될거야.
가진 걸 지키자.’
생각도 말자.
로또를 기대하지 않듯.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다.
사랑한만큼 아프게된다.
믿었던만큼 실망하게 된다.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그래서 무섭게 느껴진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으니.
엄청난 운이 나에게 올 때,
무엇을 대가로 할지 두렵다.
이제껏의 행복을 다 잃게 되지 않을까.
뭘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은 더더욱.
인생은 모순이다.
행운 뒤 꼭 불행이 함께 오는 것마저.
동전의 양면 같은 거 아닐까.
불운이 지나고 보면 행운이었다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상쇄되어지는 작용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대운을 탐하지 않는다.
대운을 꿈꾸지 않는다.
내 그릇은 겨우 요정도인가.
운도 욕심내지 못하는 난.
욕심난다 이야기도 못하는 난.
여행을 할 때 건네던 인사들이 좋았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건네던
GOD BLESS YOU.
신의 가호를 빌어.
헤어질 때 마다 안녕 대신
GOOD LUCK.
행운을 빌어.
누군가의 행운을 빌어준다는게
신이 돕기를
안전하게 여행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참 따듯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 말 덕분이었을까. 운이었을까.
그 흔하다는 소매치기 한 번 없이 여행했다.
흠 하나 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 두렵다 말하며 왜 난 이런 인사를 건냈을까.
여행을 다니며 그렇게 많이 주고 받던
다정한 인사들이 회의롭게 느껴져버렸다.
생각함으로써
다정한 마음으로 편하게 누군가의 행운을 빌어줄 수 있던 때가 지나가버렸다.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보면 비극이 이런걸까.
그 때의 내 마음은 진심이었는데
동전의 양면같은 인생에서 행운을 빈다는 것이
꼭 다정한 일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예술을 하는 바텐더로 살아가는 친구와
사업가로 살아가는 친구랑
‘행운’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
다들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고,
물 흐르듯 나를 어디론가 원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고 했다.
도무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같았다.
분명 나에게도 운이 들린 적이 있을텐데
운이라 생각하는 기준치가 높은 것인지
노력으로 이루어냈다는 자만일지
큰 것을 잃을까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나약함일지
새로운 도전을 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저냥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운을 타고 흘러본 적이 없는 나를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나약함이 운을 밀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불행을 생각하기 전에 그저 운에 올라타
파도처럼 유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운처럼 얻어낸 것들을 생각해보자. 하며
운이라 말할 수 있는 기억들을 꺼내본다.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면접을 보면 그냥 붙었다.
내가 잘 준비해서 그런건 아니었을까.
그토록 그려왔던 나의 20대 오롯이 나를
위한 쉼을 얻었던 것.
끝끝내 목표한 것을 이루어야만 했던 나의 끈질긴 욕심에 하늘이 도운걸까.
큰 병에 걸리지 않은 것.
노력하지 않으니 타고난거고..
나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게 해주었던 내 사람들을 만난 것.
내가 누구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깊은 대화가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가고자하는 방향과 목표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것.
인복이라고들 하지. 운이네.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내가 사랑으로 자란 것.
지금 엄마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
이것도 너무나 행운.
억만금 돈주고도 살 수 없는.
행운이 온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건
내가 쌓아놓은 모래성이
건조한 모래로 쌓아졌기 때문은 아닐까.
한 순간에 흩어질까봐.
내 노력에 끈적함이 없어서인가봐.
진흙이 굳으면 그렇게나 단단하다던데
큰 노력없이 많은 것들을 이미 얻었기에
더 노력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운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운을 찾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운을 운이라 부르려고 욕심을 낸건가?
이렇게나 운으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데.
내 삶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엔 행운이 가득하다.
삶이 행운이다.
작은 행복들이 모두 행운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내게 있다.
운으로 얻은 만큼
주어진 만큼
무게를 견뎌라.
두려워 말라.
지키기 위해 두렵지 않게 더 단단히 나의 성을 쌓아야 한다.
행운이라 부를 삶의 흐름을 즐기자.
나만 불행할 리 없고
나만 행복해지지 않으란 법도 없다.
이번 일주일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20대를 한 직업을 위해 보냈으니
30대는 다른 직업을 가져보자.
호기롭게 마음을 먹고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새롭게 펼쳐진 지도에 시작점에 서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엉뚱한 길을 가는건 아닌지
돈만 쓰고 있는건 아닌지
뭐부터 시작해야될지 길이 보이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나 진짜 길 잘 찾는데.
저 길인지 이 길인지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어린아이처럼 두리번 두리고 있다.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녀야할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서 발부터 떼어야할지
먼저 공부를 하는게 맞는지
놓치기 전에 잡는게 맞는지
내가 지금 조급한 중인지
아니면 늦고 있는지
답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답이 맞는지, 아니 제대로 된 질문을 했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나날들이다.
일단 어디라도 가보자 하며 꽤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시끌시끌 저마다 바쁜 사람들 틈에서 작아지던 나에게
오후 햇살 속 커피 한 잔에 위안을 얻던 나에게
책 안의 친구와 대화하던 나에게
깜깜한 새벽에 또다시 밀려오는 꿈을 꾸던 나에게
저기 뭔가 희미한,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길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났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이틀 안에 가야한다. 보여줘야한다.
큰 길에서 작은 나를 볼 수 있게 깃발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1일째, 시간이 무섭게 지나갔다.
커다랗고 선명한 색깔의 망토를 생각하며 내가 만든 깃발은 꽤나 구겨졌고 얼룩덜룩했으며,
내 몸을 겨우 두르는 정도.
찬란한 무지개빛이 아니라
잔잔하게 번지는 수채화같았다.
보일까..?
더 크게 만들걸 더 칠할걸 아쉬워 아쉬워 하면서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나를 못 알아봐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3일 쯤, 누군가 나를 본다. 손을 흔든다.
5일 째쯤, 만났다. 멈춰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7일 째, 함께 걷기로 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일주일 전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
갑자기 나에게 나타났다.
나는 운이라는 배에 올라탔다.
어떤 길이 펼쳐질 지 모른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다.
노를 잘 저을지 모른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모른다.
일단 발을 뗀 순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나를 본다.
걷는 동안 목적지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옆에 꽃도 보고 밤하늘의 별도 보고 시원한 맥주도 한모금 하고
주저앉아 바람을 쐬기도 한다.
물길을 지나 흘러흘러 간다.
길 안에서 나는 내가 어디있는지 모른다.
깊은 곳인지 얕은 곳인지.
그저 젓다보면 어딘가 조금 높은 언덕에서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을 볼 수 있다.
조금 돌아가면 어때,
길이 없으면 어때,
새로운 탐험 지도를 만드는거 설레지 않아?
운이 무서운 내 안의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강줄기는 모여 바다가 된다.
어쩔 땐 불행이라 어쩔 땐 행운이라 불리는
수많은 모순이 가지친 줄기들이 모여
당신이라는 푸르고 깊은 바다가 된다.
흘러흘러 강에 머물러 있고자 해도
어차피 바다로 흐르기 마련이지 않나.
그냥 운이라 부르며 그 흐름에 올라타보자.
바다로, 파도로 살 수 있다는 건
행운이 맞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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