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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4
[ 행운을 모르는 제가, 행운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행운.
행운이 뭘까요?
있어 보이는 척 제 이야길 각색도 해보고 일부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이리저리 구상도 해봤지만,
행운에 대해서 모르는 제가
행운에 대해서 진심으로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의도치 않게 딱 한 번, 모각글 최다 하트를 받은 것이 어쩌면 행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후로 아무리 노력해봐도 두 번은 어렵더라구요.
저는 희한하게도 글만 쓰면 염세주의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닌데' 하며 부정하지만 아무도 몰래 숨겨뒀던 또 다른 제 진심을 마주하는 걸까 싶어 걱정도 됩니다.
사실 이게 제 본모습이었나 싶습니다.
솔직히 삶에서 행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운이 실제로 있다면,
그 행운이 누구에겐 있고, 누구에겐 또 없는 것이라면,
행운을 가져보지 못한 자에게 너무 가혹한거 아닐까 싶거든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행운을 바라던 순간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럴 때 행운이 찾아온 적 단 한번도 없거든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며칠 내내 밤새우며 공부했지만, 시험 날 헷갈리는 문제를 찍은 건 죄다 틀렸습니다. 알라신, 부처님, 하나님, 조상님 세상의 모든 신을 다 찾았는데도 말이죠.
수능은 한 문제 차이로 컷트라인을 맞추지 못해 원하던 대학에도 다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마저도 실패했습니다. 수능 직전 가족과 다름없던 10년 지기 친구와 지지고 볶고 싸웠거든요.
이 가게가 내 가게라 생각하고 일했던 곳에선 제 건강을 잃었고요, 열심히 하겠단 마음으로 참가한 실습에선 골절상을 당했는데, 그건 다 네 부주의 탓이니 책임없다는 타박만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봐도 저를 좋아하지 않는 짝사랑의 매운맛도 몇 년간 톡톡히 봤구요,
실수하지 않아야지 마음 졸이며 눈 크게 뜨고 두 세번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회사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행운은 도대체 왜, 제가 그렇게나 바랄 때는 안 찾아오는 걸까요?
삶에서 행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행운이란 다른 말, 인연 ]
주마등처럼 제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저 먼 과거까지 쭉 돌이켜 봤습니다.
잊고 있던 행운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 하며 말이죠.
그중 가장 가까운 것 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누가 뭐래도 내 자식이라며 어화둥둥 해주시는 부모님.
지금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별 일이 없어도, 서로 사는게 바빠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묻고, 만나면 그 시절 속으로 돌아가 여전히 철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친구들.
혼자 강의를 듣는게 지루해 우연히 말을 걸었던 옆사람이 지금은 둘도 없이 서로를 응원해주는 사이가 되어버린 동기.
타국 여행에서 버스를 탄 후, 교통카드를 잃어버린 걸 알아 우물쭈물하던 때 선뜻 자신의 카드를 빌려주었던 이름도,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낯선사람.
현재 제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변인들을, 그리고 잊지 못하는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어찌보면 행운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께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
그때, 내가 먼저 말을 건네보지 않았더라면 -
그때, 타국에서 온 외국인을 보며 선뜻 손길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없었더라면-
모든 인연은 우연의 반복이었고, 그 우연의 반복이 어쩌면 제가 느끼지 못한 행운이 되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연(因緣)도 어쩌면 행운이었네요.
[ 행운이란 다른 말, 불 ]
앞서 행운을 그렇게나 바라던 때에는 안 찾아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아무래도 흉터를 남겼던 골절상인 것 같네요.
그땐 삶이 막막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 여기저기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러 번 우려 먹어서 익명의 힘이 사라질까봐 조금 걱정도 되는데요.
독한 몸살 감기, 코로나 등은 겪어 봤지만 뼈가 부러질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제게 골절상은 꽤나 큰 이벤트였습니다.
열정이 과했던 걸까요, 그저 맡은 소임을 다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정신차려 보니 손가락은 이미 기계에 짓눌려진 상태였습니다.
쥐 난 발가락을 만지듯, 아무런 감각이 없고 회색빛이던 손가락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필 개방 골절에 신경과 혈관도 끊어졌는데, 파상풍 주사를 맞지도 않아 절단을 고려하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던 순간, 저는 오히려 행운 보단 불운이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불운이 내게 오지 않을 법이 없다는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달까요.
하지만,
다행히 응급처지가 잘 되어서,
다행히 접합수술로 유명하신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받아서,
다행히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 아니었어서,
비록 여전히 주먹은 쥐어지지 않지만 지금은 잘 붙어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습니다.
그때 힘들었던 건 참 많습니다.
의외로 한 손을 못 쓴다는 건 많은 불편함이 따랐습니다.
혼자서 머리만 감는데 30분이 걸리고, 바지를 입고 지퍼를 잠그고, 하물며 신발끈은 묶지도 못했거든요.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서로 남탓만 하던 사회였습니다.
안타까운 감정을 내비치지만 그건 그저 '어쨌든 난 책임 없어.'란 말을 숨기기 위한 도구였다는게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덕분에 한 가지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모든 일에 책임을 명확히 해라.'
씁쓸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며 억울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철칙이었습니다.
또 배울 수 있었던 다른 한 가지는, 제가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지 찾아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건강 회복에만 전념한다는 이유로 학교도 잘 가지 않고, 사람들도 만나기 싫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으로 밤을 지새우고, 꿈 속에서도 손이 잘려나가 불현듯 울며 깨어나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제 세상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만 한 곳에 머물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기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산책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산책은 아마 그때 다 했지 싶습니다.
걷다보면 잡념도 걷어지고,
산뜻한 공기를 맡으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기분도 조금씩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완벽히 빠져나오진 못하더라도,
잠시라도 벗어나는 방법을 알면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고, 어루만져주다 보니 정말 건강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손 놓고 있던 일들도 다시 붙잡으며 결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고난과 스트레스가 있겠습니까.
그럴 때 마다 저는 여전히 지금도 산책을 하곤 합니다.
별 거 아니다 싶지만, 그 이전까지 저는 제가 기분이 안좋을 때, 스트레스 받을 때, 그저 잠으로 잊으려고만 노력했지 풀어내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았던 터라 큰 발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에서 큰 고통을 맛 보았기에,
또 제게 앞으로 인생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하나의 인생 교훈과 감정 컨트롤 법을 익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불운(不運)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습니다.
[ 여전히 행운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네요. ]
소제목이 홀린듯 쓰여졌는데, 정작 하고 싶은 뒷말들은 입술에서만 뱅뱅 돌고 있는 느낌입니다.
퇴고의 과정을 거칠 때, 입 밖으로, 손으로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네요!
글 쓰는 일 참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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