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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1.
혐오스런 행운을 쥔다. 그 형상을 쥔다. 불행 가득한 방에서, 불행이 행운의 목을 조르며 노려본다. 곰팡이 핀 행운 9개, 찢어지고 있다. 이 방에 ‘행운’은 없다. 다 죽고, 죽어가고, 겨우 견디며 늙어가고 있다. 그들은 살고 있지 않다. 그저 죽음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생명이 다 그렇지 않냐고? 아니, 그들은 불쌍한 피해자. 가해자는 나- 불행한 사람이다. 행운은 행복 아래 웃을 수 있는 존재이니까. 불행을 먹으며 자란 그들, 나는 지금 죄없는 가여움에게 학대를 하는 중이다.

마지막 행운, 폰케이스에 넣는다. 지니고는 있어야 하고, 손에 쥐면 금방 사라질 테니 최선의 방법이었다. 언젠가 썼던 메모와 함께, 그들이 오길 바라며 넣는다.

‘사랑을 띈 것들이 모여, 행운을 이룬다면’

사랑, 행운, 행복. 내가 바란 것은 단 세 가지 뿐이었는데. 4개의 잎은 사랑을 닮았다. 4개의 안에 3개가 있다. 그러니 분명 나는 저것들을 모두 소망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없다. 단 한 가지도, 나를 스쳐가지 않았다. 단 한 가지도, 단 한 가지도. 욕심의 잘못인지 불행함의 잘못인지도 모른 채 나는 체념했다.

‘우선 나가자.’

불행에게도 짝이 오더라. 시간은 그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어서 가라고- 늦겠다고- 재촉하는 숫자에게 신경질내며 집을 나선다. 너는 마중나왔고, 환한 미소로 안녕을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질투, 그 대상을 맞닥뜨리면 무겁게 미소짓는다. 본능에 진심이 더해진 탓에, 못난 마음을 억지로 누르니까.

2.

터벅터벅, 이 단어와 이렇게까지 잘 맞는 걸음을 본 적 있는가. 나는 너와 걸으면, 발걸음에 집중한다. 그러다 네 질문에, 시선을 올렸다.

‘너는 왜 항상 클로버를 보내?’

내 선물버릇, 그는 언제나 신기하게 여겼다. 요즘 선물을 통 보내지 않아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너는 잊지 않는구나. 글쎄, 왜일까. 행복을 바랐다. 4의 안에는 3이 있으니, ‘Good Luck’이 아니었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보냈다.

‘너는 네잎클로버를 가지고 다니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유행이었다. 휩쓸렸던 나, 그 유행에 편승했다. 네잎클로버 재배 농장은 10개 단위로 팔았고, 나는 그 욕심 깃든 행운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샀다. 그리고 그것들을 처치하기 위해 달고 다녔지. 그러다 버릇이 됐다.

‘같이 있는 그 종이는 뭐야?’
‘클로버에 대한 개인적 감상, 읽어줄까?’
‘응’

‘사랑을 띈 것들이 모여, 행운을 이룬다면’

‘무슨 뜻이야?’
‘그냥 막 쓴 거야. 클로버잎이 사랑을 닮았더라고. 초록색 사랑, 3개가 모이면 행복, 4개가 모이면 행운… 결국 행복이나 행운이나 사랑으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라는 바보같은 생각, 조금 해버렸던 것 같아.’

네겐 버릇이 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 너는 그를 바라보면 오른쪽 입매가 움찔대며 올라간다. 방금도 올라갔다. 그런 너의 버릇은 귀엽지만, 이해되지 않는 시선은 달갑지 않으니 멈춰줄래. 그래도 네겐 말하지 않았다. 너의 버릇도, 버릇이 나왔다는 것도.

‘효과가 있어?’

3초의 곰곰한 시간, 그 속에 효과있던 순간은, 그 그림자의 꼬리도 보지 못할 정도로 없었다.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겨운 불행 속 행운은 숨어버린다. 술래가 멍청한 건지, 숨는 이가 똑똑한 건지 찾을 수 없다. 꽤 오랫동안 진행되는 숨바꼭질이다.

‘그럼 행복과 행운을 따로 가져봐. 여름이잖아. 세잎은 흔하니까 하나 따서 가지면 안 돼?’

오늘 강의를 끝내고, 돌아온 길을 생각한다. 클로버 무리가 햇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욕심났다. 무리 중 하나, 떼어가도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데 포기했다. 내 손으로 ‘행복’을 죽이자니, 너무나도 잔인함 투성이라 말이다. 누군가의 자식, 혹은 친구일 수 있으니까. 아, 와중에도 네잎만 찾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도 이유 중 하나였을까.

‘있지, 내가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
‘세잎클로버가 만연하는 이유, 인간중심주의지만 말이야. 어쩌면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행복 하나씩 주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어.’

그의 해석은 재밌다. 덧붙이는 버릇, 무심함 속 나를 생각했구나. 그는 항상 그랬다. 사람을 포기하고자 하는 나를 붙잡고 안아줬다. 나는 그의 품에서, 항상 울었다. 고마운 마음만이 전부가 아닌 의문 가득한 울음. 가끔 이런 생각도 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나랑 같이 날아 저 아래에서 잠드는 생각. 하지만 발 딛는 너는, 서 있는 너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더 서럽다. 내 클로버를 보면 너는 환하게 웃겠다. 네잎클로버다-라고. 그 미소에 반한 나, 할 말 없이 아프다.

‘자, 줄게.’
‘세잎클로버네? 어디서 가져왔어?’
‘너랑 오래 만나다 보니 옮았다. 너한테 주려고 두 개씩 가지고 다녀.’

너의 잔인한 친절, 눈에 담았다. 시각적 충격은 함구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저 바라보다, 너의 걱정을 읽고 대답을 힘겹게 올렸다.

‘고맙네.’
‘정말?’
“응, 이제 행복과 행운이 같이 있겠다.’

거짓말이었다. 기쁨은 진실과 거짓, 양쪽 모두에 속해 있다. 그런데 왜 대답을 거짓으로 꾸몄던 걸까. 이제 내 휴대폰케이스, 그 안에 우리가 있다. 잔인한 친절과 혐오어린 행운, 사랑과 친절이 나의 목을 조른다.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그는 항상 내게 모르던 것들만 가르쳐주고 있다. 무섭다.

‘이거 줄게.’
‘네잎클로버를? 왜?’
‘보답이야. 감동적인 선물에 대한.’

부정적인 감동, 그래도 감동은 맞지 않을까. 미안, 또 거짓말했다. 이건 보답이 아니라 떠넘기기. 나는 네 친절을 보며, 혐오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혐오적 행운을 네게 건넨다. 혐오, 혐오… 지겹다. 떨떠름하게 받는 너, 귀엽다. 미안해. 나는 호의를 욕심으로 답해버렸다. 하지만 너의 호의도, 하나의 욕심이니까. 그렇지만 이걸 누군가 본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너의 욕심은 불행이 담겼다고.

3.

너와 헤어지고 불행에 돌아왔다. 잘 들어갔나는 질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애써 참아냈던 것들을 소리없이 뱉어낸다. 지금 들리는 것, 훌쩍거리고 흐르고, 나만 들을 수 있는 0.1의 외침이 전부이다.

‘비판하고 싶어, 비난하고 싶어, 혐오하고 싶어, 사랑하고 싶어. 무작정, 아주 무작정 너를 __ 하고 싶어. 너의 안에는 내가 있지. 우리는 같은 종이니까. 나는 자유롭고 싶어. 앞서 말한 것들에 무딘 존재가 되고 싶어. 느끼고 있을까- 나는 지금 우리의 종의 명을 말하고 있지 않아. 응, 느끼고 있어. 나는 우리를 너무나도 ‘우리’ 하고 있어.’

묻고 싶다. 어떻게 환해질 수 있어? 어떻게 웃을 수 있어? 알려줘. 그가 준 행복을 꺼내본다. 그가 떠올라서 화가 난다. 내 책상, 9개의 네잎클로버, 모두 곰팡이가 피고 찢어졌어. 지금 이 방에서 가장 환한 건 ‘행복’이다. 네 방에서 가장 음울한 건 ‘행운’일까. 하지만 크기가 작으니 금세 묻힐 것이다. 그러니 죄책감도, 안도감도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무참한 행운들이 곰팡이 핀 이유에 대해 말이다. 너, 불행을 먹어대고 있었구나. 견디다 못해 죽었구나. 그래서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불행 가득한 세상 속 행운, 얼마나 무력하겠나. 지금쯤 행복에 겨운 마지막 네잎클로버는 살아나고 있겠다. 파릇파릇해지고 있겠다. 축하해. 너는 행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겠다. 네가 행복해서 너무 슬프다. 너의 환한 미소에 못생김이 없겠다. 한동안 거울은 보지 않아야겠다. 손가락으로 브이, 양쪽 입꼬리에 건다. 올라가, 올라가- 축 쳐지는 입꼬리. 네가 준 것을 넣어둔다.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줘. 나의 불행을 가늠해보렴. 여름의 햇빛에 파릇파릇, 그 습도에 녹아드는 곰팡이. 참 어려운 계절이다. 그치? 더 쓰고 싶은 마음마저, 곰팡이에 녹슬고 있다.

4.

‘네가 준 클로버다?’

내민 것에 시간이 묻어난다. 말려진 잎과, 끝이 상한 잎. 내 것이 아니어도 푸름은 연약하구나. 하지만 그의 것에 파릇함이 느껴진다.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클로버의 심장이 웃고 있다. 너는 얄궂게 웃었다. 나의 표정에 속아 칭찬만을 바라고 있다.

‘내가 준 클로버는 가지고 왔어?’
‘응, 그런데 안 보여줄래.’
‘왜?’
‘부적은 너무 꺼내보면 효력 떨어진대.’

상투적인 거짓말, 내 행복은 죽음을 향하는 중이다. 너의 두 번째 버릇, 속상할 때 어깨를 으쓱댄다. 네게 비밀로 할 것이다. 그 어깨에, 진심이 담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효과는 있어?’
‘글쎄, 너는?’
‘나도 뭐, 아직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웃는 행운은 주인을 위하는데, 그는 참 무심하다. 그래, 그 무심함이 행운을 불렀을 수도 있겠다. 예민하고 피곤한 나마저, 나와 같은 이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너를 원했던 것처럼, 행운도 너를 원하지 않았을까. 욕심에 못할 짓을 했다. 미안하다. 그런데 밉다. 결국 행운은 나를 떠나 안도하는구나.

‘돌려줄게.’
‘응? 왜?’
‘너한테 있어야 할 것 같아. 내가 준 것도, 네 것도.’
‘그래도…’
‘그냥 받아. 없어도 돼.’

주저함을 털어내고, 그에게 건네버린다. 묘하게 생기없는 세잎을 알아볼까. 그는 잠시 훑다, 이내 네잎과 같이 넣어버리고 나를 본다. 너답다.

‘받고 싶으면 말해줘.’
‘그래.’

나는 확신에 포기했다. 내 것이 아닌 것, 억지로 탐하지 않는다. 구차하고 부질없다. 가끔 너는 나를 그렇게 만들고, 이번에도 그랬을 뿐이다.

‘네 별명이 하나 생각났어.’
‘뭔데?’
‘크로바, 클로버의 옛날 이름. 클로버 한껏 쥔 모습에 생각났어.’

내 마지막 클로버, 크로바. 나는 언젠가 너를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클로버를 보면 기대고 싶지. 그러니 내게 행복과 행운을 믿게 해줄래? 다른 사람들처럼. 바라보며 행운이 찾아오겠다- 생각하게 해줄래? 크로바, 내게 클로버 해줘. 부탁할게.

‘크로바? 그럼 너는 클로버 해.’
‘이유는?’
‘그냥 애칭.’

다 죽어가는 클로버, 파릇파릇한 클로바. 이 무슨 모순적인 만남인가. 그런데 내가 클로버는 사랑을 띈다고 말했지. 내게 사랑을 느끼니? 그거 하나는 아름답다. 물론 색은 내 것과 다르겠지만. 그래, 나는 아직도 너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니 안녕은 최대한 뒤로 미룬다. 한 번만 더, 클로버를 믿어볼게.

(25.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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