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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오늘 불가피한 사정으로 글을 쓸 수 없어서, 예전에 썼던 단편 소설 하나를 복붙했다. 좋아요는 무슨, 안 읽어도 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일단 살아남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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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어느 한 평화로운 마을에 솜씨 좋은 예언가가 살았다. 예언가라는 것은 천부적인 능력이나 신의 계시 같은 것을 통해 절대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그런 측면에서보자면 그는 예언가보다 대장장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으리라. 그 당시에도 수많은 예언가들이 있었지만 그는 다른 예언가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절대 신의 계시 같은 것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언가들은 예언을 할 적엔 항상 귀신에 들린 것처럼 무섭고 엄중한 목소리로 변조하고 항상 왕가의 미래나, 길흉에 대한 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성공한 예언은 그날 자신의 저녁메뉴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날 장 본 바구니의 재료들을 보고 그것을 유추해내었다. 이런 것도 예언이라 할 수 있는가? 분명 그의 예언은 초창기엔 초인적이라기보다는 추리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다른 용하다고 칭송받는 예언가들처럼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가능한 결과들을 모두 포함하여 문장들을 쏟아내는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를 변조하진 않았지만 항상 신중을 가했던 그의 문장들은 날이 갈수록 높은 정확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예언술은 계속해서 대단하고 경이로운 것이 되었다. 대장장이가 망치질을 하면서 연마하고, 더 날카로운 명검을 만드는 것처럼. 망치를 처음 잡은 수련생이 장인이 되는 데에는 청춘을 바칠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예언도 처음은 마술이 아닌 추리의 영역이었다. 물론 영적 계시 없는 예언가의 예언은 추리와 같이 인과관계와 확률에 기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언은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되어 있었다.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살해될 것이라는 예언이 오늘날까지 알려진 그의 가장 유명한 예언이 되었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예언에 있어 그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저 그는 자신의 비극을 미리 발견한 것 뿐이리라. 예언 후의 일을 이야기하기 앞서 그는 어떻게 이런 내용을 추리할 수 있었을까? 그의 첫 예언은 말 그대로 인과율과 확률의 범주내에 있었다. 요리 재료들을 보고 식사메뉴를 유추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해 보이는가? 그러나 그것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그녀의 습관과 그날의 기온과 습도까지 분석하며, 그는 어머니의 심리에 대한 추리에 아주 열을 올리곤 하였다. 어머니는 토마토를 똑같이 사더라도 평소 같으면 파스타를 할 확률이 높지만, 날이 추울땐 스프를 끓일 확률이 높다. 이 정도 수준의 분석은 그가 어릴적부터 장난치듯 어른들의 행동을 몰래 예측하며 즐겼던 것이었다. 그의 예언가로서의 자질은 자칫 비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수준에서 돋보였다. 그녀가 오늘 장을 보러갈 때 파란색 띠가 둘러진 챙모자를 했고, 집밖에 나설 때 왼발에 먼저 신을 신었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이며 웰던이라는 것이다. 메뉴를 적중시킨 밤마다 그는 호프집에 모여 있는 친구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가 몇 번이나 예언을 적중시켜도, 친구들을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하여 예언의 과정을 늘어 놓아도 그의 설명을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시험이 있던 밤에는 두자리 숫자 하나를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는 친구의 의자 밑면에 적어 두었다. 시험날 밤의 친구의 시험 성적은 그들은 그의 자리 아래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친구가 전날 밤 정확히 9시 12분에 바에 도착했고, 밖에 그치지 않고 비가 내렸다라는 설명을 남기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의 예언에 대한 설명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럴수록 그의 예언은 틀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재작년에 있었던 대지진 때문에 저기 먼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재앙적인 산사태가 있다고 예언했다. 물론 그것 또한 적중했다. 그의 예언술은 거의 신탁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가 마을에서 너무 유명해지자, 그 마을의 하나뿐인 나이 지긋한 사제는 그도 모를 위기감에 휩싸여 그 예언가에 관한 악담들과 처참한 미래들을 선지하는 것이었다. 그 예언가는 에언가가 아니라 서투른 대장장이같아서 결국 망치로 자기 머리를 치게 되리라. 물론 그건 신탁도 예언도 아닌 개인적인 저주에 불과했다.

저녁 메뉴 같은 예언은 정확한 목표아래 수많은 근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가 마을에서 제일가는 명검을 만드는 대장장이같이 되었을 때, 그 과정은 완전히 반대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자신이 감지한 여러가지 사건들로부터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날 결과들을 본인도 예기치 못하게 발견하는 것이었다. 평소와 같이 등불 하나 켜진 부엌 테이블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아무 말없이 밥을 먹은 후 그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순간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그녀의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와 그의 책상 너머 유리창에 맺힌 서리의 규칙성이 그의 의지를 초월하여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자연법칙의 신탁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예언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고, 급기야 모든 친구들과의 연을 끊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친구들을 적으로 돌리고 절연을 선언하였다. 그는 더 이상 친구를 사귀지 않기로 다짐하고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살았다.

저녁메뉴를 맞추듯 누가 그의 어머니를 죽일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을까? 시험성적을 맞추든 그의 어머니가 언제 살해당할지 맞출 수는 없었을까? 그는 그 예언이 있던 날 후로 온종일 이 두가지에만 머리를 싸맸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누군가 그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길에 이미 열려있는 현관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를 죽인 자는 마을의 한 어린 대장장이였다. 대장장이가 갑자기 왜 그녀를 죽였는지, 그가 결국에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밝혀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기록 없이 다양한 해석들만 존재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확인된 것은, 친구 하나 없이 어머니까지 잃게 된 그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대장장이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지켜본 신은 분노치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살인자와 친구가 된 악인으로 점찍힌 것이다. 신은 그에게 형벌을 내렸다. 예언가의 머리는 모루처럼 변했다. 그는 머리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형벌은 아니었다. 그 후로 그는 평범해 보이는 그렇게 보여지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떠오르는 예언들을 수첩에 적고 사람들을 기쁘게, 분노케, 슬프게, 걱정스럽게 만들고 다녔다. 그러면서 그 또한 그로부터 얻게 되는 희로애락을 책임없이 즐겼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 형벌을 잊을 수 없었는데, 그건 예언가의 불안 때문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신이 내린 형벌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는 신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고 싶어했다. 자신의 사형일자를 알고 싶어하는 사형수처럼. 알아냈더라면 그는 보다 완전한 삶을 살았으리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모루 위에 뜨거운 쇠붙이를 올려두고 망치로 틈만 나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그것을 내리쳤다. 신의 형벌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 신의 경지를 넘보려 자꾸만 자기 머리를 내리치는 그의 망치질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18.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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