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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 행운을 모르는 제가, 행운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행운.
행운이 뭘까요?

있어 보이는 척 제 이야길 각색도 해보고, 부러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로 이리저리 구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행운을 잘 모르는 제가, 행운에 대해 진심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의도치 않게 딱 한 번, 모각글 최다 하트를 받은 것이 어쩌면 행운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그 이후로는 아무리 노력해봐도 비슷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희한하게도 글만 쓰면 염세주의자가 됩니다.
'이건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닌데' 부정하지만 아무도 몰래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을 마주하는 건 아닐까 싶어 스스로 당황스럴울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삶에서 행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행운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건 누군가에겐 있고 누군가에겐 없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행운을 가져보지 못한 자에게 너무 가혹한거 아닐까 싶거든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행운을 바라던 순간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럴 때 행운이 찾아온 적 단 한번도 없거든요.

며칠 밤을 세워 공부했지만, 시험 날 헷갈려 찍은 문제는 죄다 틀렸습니다.
온갖 신들을 다 외쳐 부른 수능은 한 문제 차이로 원하는 대학의 문을 넘지 못했습니다.
호기롭게 도전한 재수는 수능 직전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와 지지고 볶으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열심히 일했던 가게에선 건강을 잃고, 진심으로 임한 실습에선 뼈가 부러졌지만, 돌아온 건 '네 부주의'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는 짝사랑의 매운맛도 몇 년간 톡톡히 보고,
오늘도 회사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두 세번 확인했지만 결국 실수를 했습니다.

행운은 도대체 왜, 제가 그렇게나 바랄 때는 안 찾아오는 걸까요?

[ 행운이란 다른 말, 인연 ]
주마등처럼 제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저 먼 과거까지 쭉 돌이켜 봤습니다.
잊고 있던 행운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싶어서요.

가장 가까운 것부터 떠올려봤습니다.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신느 부모님.
별일 없어도 안부를 묻고, 만나면 철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친구들.
혼자 강의를 듣느게 지루해 우연히 말을 걸었다가 지금은 둘도 없이 서로를 응원해주는 동기.
외국에서 교통카드를 잃어버려 우물쭈물하던 제게 카드를 건네주었던,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낯선 사람.
입원했던 병실에서 손녀처럼 챙겨주셨던 할머니.

현재 제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못하는 고마운 이들과의 인연은 어쩌면 우연의 반복이었고, 그 우연이 제가 미처 느끼지 못한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만나지 않았다면,
그때, 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때, 제가 먼저 말을 건네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낯선이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면,

인연(因緣)도 어쩌면 행운이었네요.

[ 행운이란 다른 말, 흉터 ]
행운은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흉터를 남긴 골절상입니다.

그땐 삶이 막막했습니다.
독한 몸살 감기, 코로나 등은 겪어 봤지만 뼈가 부러진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열정이 과했던 걸까요. 열심히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정신차려 보니 손가락은 이미 기계에 짓눌려진 상태였습니다.
쥐 난 발가락을 만지듯, 아무런 감각이 없고 회색빛이던 손가락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필 개방 골절에 신경과 혈관도 끊어졌는데, 파상풍 주사도 맞지 않아 절단을 고려하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던 순간, 저는 오히려 행운 보단 불운이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불운이 내게 오지 않을 법이 없다는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달까요.

하지만,
다행히 응급처지가 잘 되어서,
다행히 접합수술로 유명하신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받아서,
다행히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 아니었어서,
흉터는 남았지만 지금은 잘 붙어 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습니다.

한 손을 못 쓰는 건 상상 이상으로 불편했습니다.
머리 감는 데만 30분, 바지 지퍼도 힘겹고, 신발끈은 아예 불가능했죠.
그보다 더 고된 건, 서로 남탓만 하던 사회였습니다.
표면적인 위로 뒤에 숨은 "어쨌든 내 탓 아님"이란 시선이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덕분에 한 가지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모든 일엔 책임을 명확히 해라.'
씁쓸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며 억울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철칙이었습니다.

또 하나 배운 건, 제가 힘들 때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으로 밤을 지새우고, 꿈 속에서도 손이 잘려나가 불현듯 울며 깨어나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제 세상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만 한 곳에 머물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기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산책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산책은 아마 그때 다 했지 싶습니다.

걷다보면 잡념도 걷어지고,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완벽히 빠져나오진 못하더라도, 잠시라도 벗어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고난과 스트레스가 있겠습니까.
그럴 때 마다 저는 여전히 지금도 산책을 하곤 합니다.

별 거 아니다 싶지만, 그 이전까지 저는 그저 잠으로 잊으려고만 했지 풀어내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았던 터라 큰 발전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잠만 자던 예전의 저와 달리, 지금은 기분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거죠.

흉터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습니다.

[ 여전히 행운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네요. ]
행운이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제가 만난 좋은 사람들, 견뎌낸 시간들, 그리고 남은 흔적들을 돌아보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행운은 늘 원하는 순간에 오지 않았다 생각하지만, 지나고 나니 내 곁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행운입니다.

(15.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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