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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최종본]
등가교환의 법칙
종교는 없다. 등가교환의 법칙을 믿는다. 뭘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운을 기대하지 않는다. 얻는 만큼 잃는 게 있다. 사랑한만큼 아픈 것처럼. 믿었던 만큼 더 실망하게 되니까.
무조건 20대가 지나기 전에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 용돈 한 푼 덜 드리고, 다이어트를 핑계로 먹을 거 덜 먹고, 갖고 싶은 거 꾹 참고, 친구들을 외면하며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이 천만원 쯤 됐을 때, 스물일곱, 4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기어이 한국을 떠났다.
"우리 처지에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치던 부모님. 거기다 대고 "돈 다 쓰면 돌아오겠다." 말하고 기약 없이 떠났다. 남미, 오세아니아, 극지방만 빼고 모두 돌았다. 떠나는 순간부터 두 계절 내내, 여행에서 행복과 불안은 손을 잡고 함께 왔다. 기쁨과 우울은 항상 함께였다. 황홀과 죄책감이 동시에 나를 삼켰다. 비행기를 타기 이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반대로 불안과 죄책감이 위로와 행복의 손을 잡고 또 함께 왔다. 그런 마음으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건네던 "GOD BLESS YOU. 신의 가호가 있기를."
헤어질 때 안녕 대신 "GOOD LUCK. 행운을 빌어."
나는 늘 그들의 행운을 빌었다. 누군가의 행운을 빌어준다는 게, 신이 돕기를 바란다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해서.
그런데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 '반드시' 불행을 함께 건네는 인사같이 느껴져 어쩐지 서늘해진다. 행운에도 등가교환의 법칙이 작용할테니.
실제로 모든 인도-유럽계 언어에서는 오늘날의 행복이라는 단어가 '운', '행운', '운명'이라는 말들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영어로 행복, 해피니스(happiness)의 어원은 올드 잉글리시와 미들 잉글리시의 ‘해프(happ)’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회와 행운을 뜻하고, 여기서 ‘우연’, ‘아마도', ‘불운한’과 같은 단어들이 파생됐다고 한다. 행운과 불행이 한 몸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누군가의 행운만을 온전히 빌어줄 수 있던 때가 지나가버린 기분. 행운을 빈다는 것이 꼭 다정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 누군가에게 행운을 빈다는 건, 어쩌면 불운을 함께 실어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등가교환의 법칙을 믿게 되었나.
"그저 주어지는 건 없단다."
엄마아빠는 항상 "공짜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난과 떼어지지 않는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생 때, 집에 빨간 딱지가 붙는다는 경고장을 봐버린 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서른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그렇게 심장이 내려앉던 일은 다시 없었다. '와,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 빨간 딱지?' 가족들과 즐겨보던 주말드라마 주인공이 겪던 역경들이 떠올랐다. 심장이 펄떡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찢어 버린 그 봉투를 다시 우편함에 넣어버렸다.
엄마아빠의 삶에는 파도가 지나간 흔적이 가득했다. 움푹 파이기도 하고 탁해지기도 한 얼굴. 나에게 물이 튀지 않게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막았다. 아빠가 새벽잠을 줄인 덕분에 나는 느지막이 일어날 수 있었고, 엄마가 직장을 잃어 버스를 타고 왕복 네시간을 우리를 데리고 돈벌이를 찾으러 다니던 때가 우리에겐 여행이었다. 엄마아빠가 굶더라도 우리 쌀밥을 안 먹인 적이 없고, 하룻밤이든 남의 집이든 지붕없는 집에서 자본 적 없다. 엄마아빠가 돈이 없어 병원을 못가 병을 얻었더라도 우린 어디 크게 아파본 적이 없다. 그 덕에 나와 동생은 말갛게 자랐다. 엄마아빠에게 그늘이 져야 내가 빛을 냈다. 엄마아빠가 뛰어야 내가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잃은 만큼 얻는다고, 숨 쉴만 하면 불행이 기어이 따라오고 만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손을 뻗어봐도 너무나 당연하게.
엄마아빠가 수많은 파도를 오르고 내리며 깨달았던 그 진리는 수영을 배우기 전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 어린 나에게 닿아 플라맹고 튜브처럼 부풀려졌다. 그래서 내가 ‘욕심내지 말자’를 주문처럼 되뇌이는 걸까. 가지려면 잃어야함을 알아서, 잃어야 얻는게 있다는 것을 너무 오래 봐버려서 일지도 모른다.
운을 탐하지 않는다. 혹여나 다가오면 밀어냈다.
'무서워. 오지마. 무서워.'
등가교환의 법칙. 무언가를 줄 때 부디 내가 잃어도 괜찮은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져가길.
다른 사람들은 운에 기대어 살까. 무언가 잃을까 불안하지도 않나? 최근 만난 두 친구에게 물었다.
"행운이 뭐야?"
"이 일이 일어날 타이밍이 전혀 아닌데 갑자기 일어나.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어."
"그냥 파도를 타는 것처럼 물 흐르듯 나를 내가 원하던 곳으로 데려가는 느낌이 들어."
도무지 그게 뭔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 같았다. 분명 나에게도 운이 들른 적이 있을텐데. '내 노력으로 이룬거야.' 같이 올 불행에 대한 두려움을 덮으려는 자만으로 보지 못한건지, 뭔가 잃을까 두려운 내 나약함 때문일지. 파도에 떠밀려 갈까봐 물장구만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운을 타고 흘러본 적 없는 나를 만든걸지도 모르겠다. 튜브를 건네주고 수영을 배우면 되는데. 파도가 오면 준비한 날개를 펴면 되는데. 그 튜브가 풍선처럼 빵 터질까봐 두려웠나보다. 나는 법을 몰라서 두려웠나보다.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한테 행운은 뭐야?"
"너희가 이렇게 잘 큰 게 행운이지."
"잃을까봐 두려워. 그저 얻은 게 아니잖아."
"그래도 얻은 건 얻은 거야. 내가 줄 수 있는 걸 주고 더 큰 걸 받은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내서, 잘 버텨서 행운이 된 거야."
이제 난 운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함께 건네줄 불행에 맞설 날개를 다듬는다. 잠수하는 법을 배운다. 파도를 타지 못해도 괜찮아. 가라앉아 바다를 탐험하자. 잃는 대신 얻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내게 있는 것 하나를 건네고 다른 하나를 얻는 걸로 하자. 많이 건네고 많이 나누고 많이 주고 얻고, 얻고, 얻자. 이것 또한 등가교환.
지금 이곳에서 내 침묵이 누군가에겐 빛이 되리. 나의 외로움이 당신에게 곁이 되기를. 그렇게 기꺼이 나는 내 어두운 마음 안에서 오늘도 당신의 행운을 빈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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