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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체크아웃했다
<행운을 먹고 자랐다>
딸이 귀한 집안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유달리 나를 예뻐했다. 동네 어른들도 볼 때마다 보조개를 한번씩 찔러보며 귀여워했다.
사촌을 포함해서 오빠는 넷, 언니는 둘이었다. 한 명은 고모의 딸이고, 다른 언니는 맏이였기에 나보다 조금은 덜 예쁨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생일 잔치에서 할아버지의 무릎은 항상 내 차지였다.
아빠와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부터 집안일이 더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내로 나가는 길이면 아빠는 버스에 서있는 한 시간 내내 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엄마는 아침마다 한 가닥도 빠짐없이 공들여 머리를 땋아주었다. 오빠도 나를 혼자 두고 놀러가는 법이 없었다. 오빠의 친구들도 따라온 여동생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이 만들어 준 행운을 먹고 자랐다.
내게 행운은 줄지 않는 쌀독같은 것이었다. 행운으로 지은 쌀밥은 문을 열면 언제든 준비되어 있었다. 곁엔 가족들이 있었고, 언제 문을 열든 항상 포슬한 김이 났다. 입안 가득 한 수저를 먹고 볼록한 볼로 내가 웃으면 모두가 같이 미소지었다. 나는 그저 행복했다.
'언니가 사라졌다.'
새벽부터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전화로 무거운 내용이 오가는 듯했다. 방문을 반쯤 열고 분위기를 살폈다. 무언가 부산스러웠으나 처참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아빠는 말을 하려다 입을 잠시 꾹 다물었다. 그리고 뒤이어 낮게 읊조렸다. ‘죽었다는 건데.....’ 하고.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며 아빠의 말을 다급히 막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 우리집에 모인 친척들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낮고 조용하게 들리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상황을 가늠할 뿐이었다.
언니는 하루 전 호텔에 혼자 투숙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언니는 세상에서 체크아웃했다.
이제 고모에게는 딸이 없어졌다.
언니가 사라진 후 고모를 대하는 게 어려웠다.
그때부터 딸 역할극이 시작되었다. 평소엔 하지 않던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물었고 챙기지 않던 생일을 알뜰히 챙겼다. 쉽지만 내겐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순간 오빠가 내 역할을 대신했다. 고모가 홈쇼핑이 어렵다며 전화가 왔을 땐 대신 주문해 주었고, 고모네 집에 생수가 떨어져 갈 때면 알아서 척척 주문을 넣어주었다.
오빠 덕분에 언니의 부재도 조금씩 잊혀져 갔다.
잊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연스레 익숙해져 갔다.
오빠는 내게 모든 것을 양보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나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을 택했다. 커서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 담을 때마다 내 그릇을 더 예쁘게 장식해 주었다.
계절이 지나 옷을 사야 할 때도 자신의 옷을 고르는 대신 내게 더 예쁘고 고운 옷을 골라주기 바빴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오빠의 존재야말로 행운 그 자체였다.
나는 가족이 만들어준 행운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언니의 나이를 넘겼다. 사촌 오빠들이 하나둘 차례로 결혼하기 시작했다. 고모의 아들도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이제 그 집에도 ‘딸 같은 며느리’가 생겼다. 그러나 딸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사이에서 오빠는 여전히 내 대신 딸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한 집안의 형제 중 한 명이 잘 되면 나머지 한 명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오빠가 힘든 것은 다 나 때문이 아닐까. 내 일이 조금 안 풀리면 오빠는 좀더 행복해질까. 어떻게 하면 행운을 나눠줄 수 있을까. 애초에 ‘나누어 준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러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차를 폐차할 만큼 큰 사고였다.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입원실을 찾았다. 단 하루도 단 한 끼도 빠짐없이, 맛없는 병원밥 대신 집밥을 먹으며 입원생활을 했다.
퇴원을 한 이후에는 쌓인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결국 쉬는 걸 택했다. 감사하게도 가족 모두가 나의 휴식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그때쯤 오빠의 일이 거짓말처럼 잘 풀리기 시작했다. 더 좋은 곳에 취업을 했고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나는 어쩐지 안도했다. 내게만 몰려있던 행운이 조금은 나눠진 걸까.
괜히 안심이 되었다.
오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힘들지 않았을까. 가끔은 속상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대신하며 고되지 않았을까. 혹시나, 정말 혹시나,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미웠던 적은 없었을까.
쉬는 날이 길어지자 나는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나의 앞날을 걱정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물으셨다.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앞으로 길게 봐야 십 년이라는 이야기에 난 다른 어른들께 하던 것처럼 ‘오래 살아야지’ 무슨 말이냐며 너스레를 떨 수 없었다. 그것은 본인을 갈아서 나를 더 길러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쌀독 안을 들여다 보았다.
쌀독을 채워놓은 것이 누구인지 왜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행운의 쌀독도 바닥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던 걸까. 영원히 바닥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걸... 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내가 채워볼까. 하는 어설픈 계획을 세우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내가 채운 쌀독으로 지은 밥은...' 결코 같은 맛이 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도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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