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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발걸음에 박수를
(최종본)
<청춘의 행>
아아! 안녕하십니까.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 중 하나 입니다. 이 하나가 여러분에게 전달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얘기를 남에게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어서 비록 서툰 솜씨겠지만, 청춘기차, 출발해보겠습니다.
모두들 기차는 타보셨겠죠. 저는 요즘 한 달에 8번은 타는 것 같습니다. 글을 배우기 위해 주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간지 벌써 3달째가 되었네요. 심하게 아파서 강제 침대 붙박이가 되었을 때보다 확실히 시간은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멈춘 청춘의 기차가 다시 움직이는 것만 같아 하루하루가 감사한 나날입니다. 저는 기차 안에서도 창가석을 가장 좋아합니다. 매초마다 변화하는 풍경이 아주 흥미롭거든요. 푸르러지는 풍경을 보며 저는 가끔씩 21살, 3월의 그 이상한 날, 통증이 시작된 날을 기억합니다.
그 날은 어스푸름한 새벽에 눈이 떠진 날이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기이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하루에 운동을 2-3시간 해도 다른 약속을 나가는 강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불행은 뜻하지 않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법인가요. 온몸에 힘을 넣을 수 없고, 바늘과 불이 제 몸을 스치는 통증은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저에게 내려왔습니다. 동네 병원으로 겨우 걸어가 약을 받아먹고도 났지 않자, 2차 병원 다음 3차 병원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2년 간 병명을 찾지 못하고, 마약성 진통제조차 전혀 듣지 않는 통증과 함께 청춘의 행은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의사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나 다친 일이 없었는지. 아무 수치도 저의 통증을 설명할 수 없었으니,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걷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럽게 지속되는 이 통증을 머리에 지며 원인을 찾으려 부단히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너무 괴로워서 '암이면 치료라도 해보지.' 라는 생각도 들었던 적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존재 할 것인데, 2년 동안 병원을 돌아다녔어도 제 손에 쥐어진 병명과 치료법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저의 상처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습니다. 원래 하기 싫은 게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경우 일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남은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내부의 원인.
제가 한 기도가 원인일까. 생각해본 적 있습니다. 이상한 새벽이 오기 몇 주 전에 무신론자인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용은 간단하게 "부디 저를 강하게 할 고난을 주세요."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기도를 할 때 행운을 원하는데, 불행을 원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납니다. '쟤 왜 저러나 ' 싶습니다. 근데, 그때는 정말 간절했어요. 그때는 신이 그 내용을 들어줘서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고난을 얻은 것이 아니라, 제가 왜 강해져야만 했는지에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모두를 안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때 묻지 않은 사람이 되길 원했습니다. 순수하고 고결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계속 도망쳐 다녔습니다. 저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가질 수 있는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미래를 계산했고, 과거를 무시했으며 현재를 닫았습니다. 삶의 그 어떤 것도 달콤한 것을 부러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며 그렇게 저를 먼저 안아내는 연습을 거듭했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준 진통제. 실은 1년 간 먹고, 1년 동안은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똑같았거든요. 먹든 안 먹든. 그리고 진통제에 절여져 삶을 피폐하게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모든 아이들이 부러웠었습니다. 저도 청춘을 즐기고 열정만큼 노력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 영화' 라는 시한부 소재의 드라마를 요즘 방송하다라구요. 시한부 캐릭터 영화를 보며 한때 차라리 시한부이길 바랐던 저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투병은 저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저는 삶이 한정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비록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는 인생이겠지만, 통증을 친구로 두며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6개월 전부터 몸이 나아져서 진통제를 조금씩 먹고 있는데요 몸이 괜찮아질수록, 진통제가 효과를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버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을 직면하고 느끼고 우주로 접어 보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행운이라는 주제에서 불행을 말하는 것은 둘 다, 똑같은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불행도 포장지가 험악할 뿐, 그 내용은 행운의 선물입니다. 제 말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선물 포장지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분명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의 기차에 승차하여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도 청춘의 행(불행, 행운)이 깃들기를. 많이 아파하고 극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p.s. 자조적이고 관념적이지 않는 것 자세히 솔직한 거 정말 어렵네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제 마음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몸이 안 좋아서 이 정도밖에 못 썼습니다. 아쉽긴 해도 천천히 가기로 다짐했으니, 지금 몸상태에서는 이게 제 최선인 것 같습니다. 피드백 감사하고 좋은 글 쓰도록 앞으로도 조금씩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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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발걸음에 박수를.
나의 기도는 항상 끝내 이루어졌다. 이건 크나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끼고 아껴내어 기도를 보내는 편이다. 행운에도 총량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처음 갔다. 그 교회는 하천을 낀 농촌 마을답지 않게 큰 교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를 들락거렸다. 목사의 연설이 한몫했다. 어린 나의 눈에도 호소력 있는 내용과 목소리였던 것 같다. 그의 열정적인 목소리는 주일 오후마다 공간에 울려 퍼졌다.
예배당에는 신의 형체 대신 십자가가 걸려져 있었다. 신을 굳게 믿고 기도를 펼치는 어른들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의 투사처럼 필사적으로 보였다. 어떻게 저리도 모든 것을 바치고 감내할 수 있을 듯이 기도하는지. 당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라 오히려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볼 수 있어서.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신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회개는 죄스런 생활 태도에서 탈피하여 하나님께 귀의하는 일을 말한다. 나는 회개의 뜻을 정확히 알고 나서부터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 회개하면 죄가 용서 된다는 집사의 말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아니, 내가 지닌 불행이 떠올라 숨이 턱 막혔다. 진정 신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건네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이런 의문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바로 옮겨낸 이유. 그것은 사죄조차 받지 못한 상처는 용서할 기회도 박탈 당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를 보이지도 않는 신이 가져가는 것도. 신에게 사죄하고는 용서 받았다며 평안을 느끼는 것도. 그 비슷한 어느 것도 목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는 난 의식적으로 작은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신과 떨어져 나의 선택과 의지로 살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행운과 멀어져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불행과 행운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는 불행을 처리하기 위해서 바쁘게 손을 놀렸다. 행운을 찾아볼 여유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행운에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행운처럼 두껍게 쌓여있는 상장에도 기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쉬워졌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삭제되는 로봇처럼. 망각의 기술 또한 늘어갔다. 어떤 상황이나 타인, 자신에 대해서도 항상 제 3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었다.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에는 문제될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용서할 권리를 박탈 당한 내게 주어진 마지막 권리는 불행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것 뿐이었다.
몇 년 간의 연습 끝에 난 돌로 만들어진 심장을 얻을 수 있었다. 돌의 심장은 효과를 보이는 듯 했다. 마침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바다에서 둥둥 떠있는 얼음처럼. 나는 햇빛에 녹아 심해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햇빛도 불행도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불행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나는 살아있으나, 동시에 죽어있었다. 정확히는 살고 싶어 나를 죽였다. 그때의 나에게는 행운이란, '항상 가까이 있었음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행을 느낄 수 없는 심장이 행운 또한 느낄 수 없는 것은.
그러나,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난 로봇도 골렘도 아니었다. 나는 펄떡대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불행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였다. 때마다 느끼고 지나가야 했던 감정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한 번도 제대로 방출되지 못한 감정들은 넘쳐터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기도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나를 더 강하게 해달라고. 무엇이 나를 이 고통에서 꺼내줄 수 있는지. 정답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불행에 익숙해지는 순간, 모든 것들이 허무로 보인다. 맑은 하늘과 웃음, 성취 같은 행운도 허무가 되고, 불행 또한 허무가 된다. 죽음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이지만, 삶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들이 행운인 것을 그때의 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스무살이 되고 독립했을 때,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 일은 벼락맞은 로또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수치도 의사도 그 병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는 건강을 잃고 나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2리터의 물을 드는 일. 집 앞 편의점을 나가는 길. 설거지를 하는 일. 큰 가치가 아닌 작은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도피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리라.
용기있는 자가 행운을 볼 수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보았던 기도하는 사람들이 지금에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 신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음을. 행복이란 행운은 내가 쳐다보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껏 불행과 싸워온 결과물로 진정한 단단함을 얻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단단함. 불행을 받아들이는 단단함. 너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단단함. 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느끼고 눈물과 웃음을 아끼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용기 있게 살아내다보면, 평안해지는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뇌하며 견디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평안하기를 바란다. 기꺼이 삶을 받아내고 있을 그들의 용맹한 발걸음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27.9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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