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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확실한 행운>

“크리스 저 이번엔 정말 못하겠어요 포기할래요”“어쩔 수 없죠,이번과 별개로 부담을 털어내보십쇼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쓸 수 없는 법”

'필일일必日一.'심플합니다. 21일 동안 매일 글 한번 써보자는 겁니다. 21일은 '습관'이 형성되는 최소한의 단위. 그러면 무조건 글 실력이 늘 거다, 적어도 두렵진 않아질 거다, 쉬워질 거다, 라는 게 이 프로젝트의 주장이자 요지입니다.-유락yoorak의 글쓰기 프로젝트 [모각글:필일일] 소개 中-

나는 모각글(일명 '모여서 각자 글쓰기') 시즌 1,2,3를 모두 참여했다. 21일동안 매일 주어지는 글쓰기 미션에 최소200자로 답해야한다. 하루라도 미션을 수행하지못할경우 계정이 삭제당하는 무시무시한(?) 규칙이 있다. 하지만 세번정도는 실수해도 계정이 삭제되지 않는다 어떻게 아냐고? 글쎄 나도 굳이 알고싶진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창시자 크리스는 표면의 단단함 아래에 은근한 자비와 정이 숨어 있는 사람이다. 두번정도는 그냥 넘어가주고 불쌍한척에 구구절절 핑계라도 대면 몇번 더 봐준다. 그럼에도 나는 시즌2에서 계정을 삭제당했으며 시즌3에도 삭제당할뻔했으나 또 한번의 자비를 받아 최종원고(별표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었다.(별표시)시즌2부터는 하나의 주제로 최종원고를 작성하면 참가자들의 글들이 모여 책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종원고 제출을 앞두고 나는 또 '크리스 저 이번엔 정말 못하겠어요 포기할래요' 라고 말하고만것이다. 이렇게쓰고 보니 나 정말 배은망덕하고 뻔뻔하다. 이 프로젝트가 나를 물가로 끌고와주었으나 정작 물을 먹지못하는 아니 안먹는 바보같은 나!

21일동안 미션을 꾸준히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반성한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결국 핑계다. 하지만 이번시즌3 최종원고 제출을 포기한 것은 나에게도 속사정이 있다.이번시즌의 주제는 이 책의 제목에서 봤겠지만 '행운'이다. 행운에 대해서 글을 쓰려니 자꾸만 잘알지도못하는것에 대해 아는척하는 것 같을 글이 써졌다.행운(幸運)은 다행 행 옮길 운다행(多幸)은 많을 다 다행 행 .어찌저찌 그러므로 '행운을 부르는 주문은 다행이다' 같은 글을 쓰다가 길을 잃고 헤메다가 머리가 아파 타이레놀까지 먹었다. '너 또 잘 쓰려고 하네? 척 하지마. 그냥 너 이야기를 써.' 속으로 나를 비아냥 거렸다. '내이야기? 내가 행운에 대해서 이야기 할 거리가 있나. 소소한 이야기거리 몇이 있었지만 어쩐지 모양이 맞지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참가자들의 최종원고까지보니 내 글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잘 쓰려는 마음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취미로써의 글쓰기를 추구해요. 취미라는게 꼭 잘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자체를 즐기는 거잖아요. 잘 쓰겠다는 마음은 잠시 내려두고 쓴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다듬는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떠오르는것들을 혼잣말을 내뱉듯 구구절절 써보아요.마음에속에 있는 것을 글로 쏟아내 보세요.'

내가 호스트로 진행하고있는 '아마추어 글쓰기 클럽'에서 늘상 하는 말이다. 나는 글을 잘쓰지는 못해도 쓰는 것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쓴 글들 중 꽤 괜찮은 글들을 엮어 작은 책도 내었다. 그런데 막상 '행운'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갑자기 낯선 언어를 마주한 사람처럼 머뭇거렸다.말문이 막히듯 글문이 턱 막혔다. 그럼에도 해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뭐라도 써보았다. 떠오르는 것들은 너무 별 것 아니게 느껴졌고 아무리 문장을 조합해도 의미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쓰면 쓸수록 처참해졌다. 억지로 끌어내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전장을 오래 지켜온 병사처럼 이미 진이 빠져버린 마음으로 문장앞에서 무릎꿇고 만 것이다.

며칠 후 유락에서 만난 크리스는 나를 살짝 꾸짖었다.“나태해진거죠?”“…아니에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보려 했어요.근데 정말, 못 쓰겠는 걸요…”“뭐라도 완성된 글을 들고 왔으면 피드백이라도 해보는데 초고조차 없다니…”나는 부끄러움 섞인 울상의 얼굴을 한다.“처음 베르(나의 닉네임)가 쓴 책을 받았을 땐 솔직히 기대 안 했어요.그런데 글을 읽고 의외로 잘 쓴다고 생각했죠.시즌 3 회고 모임에서도 베르 글을 좋게 말한 분들이 있었고요.그래서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포기한다니 아쉬웠습니다.”빈말은 잘 하지않는 크리스의 칭찬에 마음이 일렁였다.“…그럼, 늦지 않았다면… 뭐라도 끝까지 써볼까요?”“네, 한번 써보세요. 그런데 어떻게 될진 모릅니다.”“…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행운'에 대해 쓰기 어려워 한 걸까. 내 인생에서 감사할 일들은 많았지만 정말 누가봐도 '행운'이라고 할 일들은 없었기 때문이아닐까. 오히려 누가봐도 '불행'이라고 할 사건은 몇가지 떠오른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내게 주어진 행운은 '특별함'이아닌 '평범함'이였다.
좋아하는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특별함이 하나 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그말인 즉슨 평범함을 하나 둘 떼어놓고 보면 하나하나 특별하다는 말이된다. 이런의미로 쓴 가사는 아닐테지만 나는 제 멋대로 해석해버린다. 나의 평범한 행운을 꽃잎을 뜯듯 하나하나 떼어내어 가지런히 놓아본다. 오늘처럼 적재적소에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작은 칭찬에도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 읽기와 쓰기를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레 좋아한 것, 모든 감정과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 행운이라는 단어보다는 다행과 감사에 가깝다. 최근 내가 '다행이다' 라고 말한 것은 '내가 나라서 정말 다행이다' 였다.
그날은 오랜시간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무너져내리면서 내 마음도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날이였다.허무함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박노해 시인이 말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그래 정직하게 절망하자 생각하며 헬스장으로 갔다. 에어팟도 끼지않은체 천국의 계단을 올랐다. 올라오는 절망감을 온전히 느끼며 계단을 밟았다.한계단 한계단 밟을 수록 마음은 얼얼했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속으로 '악'소리를 지르며 계속 계단을 밟았다.무언가를 밟고 올라서는 쾌감이 올라오며 땀이 비오듯 주륵주륵 흘렀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계속 계단을 밟았다. 어느순간 숨이 안쉬어질만큼 호흡이 어려워져 운동을 멈췄다. 나는 짐슴처럼 헉헉거렸지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처럼 내 마음을 꽉 잡고있던 어떤 것이 땀과 함께 흘러갔다. 샤워를하며 또 한번 다시 새로태어나는 기분이였다. 그때 나는 생각 한 것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내가 나라서 정말 다행이다. 감사하다” 나의 행운의 조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로또당첨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지만 행운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것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로 숨쉬며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선물이 아닌 조용히 쌓인 다행과 감사들이 나에게는 확실한 행운이다.

(17.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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