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완료했습니다..

행운의 기준은 몇 점일까?

‘어느 정도 좋은 일이 생기면 그걸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복권 당첨부터, 놀러가는 날의 맑은 날씨, 원하는 목표 달성, 의도치 않은 행복까지—행운이 찾아오는 길은 참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건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의 말이었다.

“행운은 성격이다.”

이 말이 내겐 이렇게 들렸다.
“행운은 결국 해골물이다.”
그러니까, 똑같은 일이 생겨도 어떤 사람은 행운이라 여기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는 얘기다.

만약 행운을 1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로 매길 수 있다면,
나는 과연 몇 점부터를 ‘행운’이라고 생각해왔을까?

이전 글에서 나는 평범하다 못해 불운한 사람이라 스스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나는 행운이 없는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SNS와 유튜브에 절여진 나라는 사람은,
크고 작은 행운들을 잊고 살았던 것뿐이다.
50점의 행운에도, 60점의 운에도 감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80점쯤 되는 운이 찾아와도
“이제야 왔냐”는 듯 툴툴댈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행운들을 한번 돌아봤다.

첫 번째 행운. 눈썹.

나는 눈썹이 진하다. 지금이야 정리도 하고 숱도 쳐서 적당하지만, 어릴 땐 눈썹만 보였다. 특히 어른들, 그중에서도 어머님들이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나에게 주신 작은 행운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1학년 신입생이었고, 경쟁자는 셋.
다들 머리를 빡빡 민 데다 같은 교복, 비슷한 공약.
결국은… 그냥 첫인상 싸움이었다.

그런데 내가 뽑혔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눈썹이 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
사람보다 눈썹을 기억하다니.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뽑혔고,
그건 내게 분명한 ‘행운’이었다.

두 번째 행운. 아버지.

나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있다.
경상도 남자, 그 특유의 무뚝뚝함과 가부장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걸 알게 된 건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그 집 아버지의 말투와 분위기를 보며,
그제서야 내 아버지가 조금 ‘특별한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젊었을 땐 좀 노셨을 것 같기도 하다.
20대 사진도 그렇고, 주량도 그렇고.
아무튼 그런 아버지와,
난 크고 작은 고민을 참 많이 나눴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
이건 말할 것도 없는, 내 삶의 큰 행운이다.

세 번째 행운. 사람.

나는 인복이 좋다.
이유도 없고, 증명도 어렵지만
살면서 특별히 미움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근데 누군가 나를 미워했는데
내가 모르는 걸 수도?

그렇다면 이 행운의 이름은
‘눈치 없음’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ㅎ

사소하지만 내 인생에 계속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로또 당첨 같은 대박은 아니지만,
그보다 오래, 진하게 남는 행운이다.

행운과 불운은 ‘혼자 오지 않는다’

살면서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행운과 불운은 반드시 동행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내가 어떤 자세로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억 하나: 성인식

스무 살, 첫 연애를 했던 여자친구가
나와 헤어진 후 내 친구를 만났다.

지독한 성인식이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실은 이별보다 친구를 잃은 게 더 아팠다.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였으니까.

그때 나는 그냥 조용히 참았다.
주변 사람들이 더 화를 내줬고,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하려 애썼다.

용서한 건 아니지만, 증오하지 않는 상태.
그 오묘한 감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불행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어떤 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기억 둘: 돈의 유혹

성인이 되고 ‘돈을 버는 것’에 미쳐 있었다.
빠르게, 많이, 쉽게.

주식, 코인, 유행하는 건 다 해봤다.
코로나 지원금 덕에 주식시장이 뜨거웠고,
그냥 느낌으로 주식을 샀다.

운이 좋았다.
400만 원이 1,100만 원이 되었다.
세상이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벌던 10만 원, 20만 원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위험한 테마주, 공모주를 무모하게 들이댔다.
결국 남은 건 마이너스 200만 원.
원금도 못 지킨 채 모든 주식을 손절했다.

그 이후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나중엔 사기를 당했던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경제관념, 투자 태도, 세상을 보는 시선을 얻었다.

돈은 잃었지만,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난 지금도 운이 좋은가?

그렇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이라는 걸 ‘다르게 보게’ 되었기 때문에.

이젠 100점짜리 행운이 오지 않아도,
그저 내게 잠시 머물렀던 50점, 60점짜리 기쁨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오늘 나는 내 눈썹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눈치 없는 나에게도 감사하며,
내 삶 속 ‘작은 행운들’을 꺼내본다.

그렇다면 불운은 어떨까?
행운은 그 자체로 날 행복하게 했고,
불운은 날 우울하게 한다.
하지만 불운은 무엇이 행운이고 불운인지 기준을 만든다.

불운은 다음에 찾아올 행운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를 만들어줬다.
결국 불운을 통해 행운을 배운다

불운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계획에 없었고, 원한 적도 없으며,
받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조용히, 혹은 요란하게 스며든다.

처음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불운은 그냥 불행이고,
불행은 견뎌야 하는 고통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불운의 끝에 무엇인가가 남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때의 실패가 나를 단단하게 했다는 걸,
그때의 거절이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었다는 걸,
그때의 상처가 더 깊은 감정과 공감을 알게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운은,
나를 멈춰 세우고 다시 보게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에 흔들리고, 어디에 기대는지를.

그래서 불운은,
행운의 반대말이 아니라
행운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은 언제나 웃으며 오지 않는다.
가끔은 울고 있는 얼굴로,
때로는 무릎을 꿇린 채로 다가온다.

하지만 끝까지 마주하면 알게 된다.
‘이것도 나를 위한 일’이었음을.
‘이것도 언젠가 웃으며 말할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이제
운이 좋았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운이 좋았다고 믿는 대신,
불운에서 무언가를 배워냈다고 말하고 싶다.

그건 내게 찾아온 ‘느린 행운’이었으니까.

—————————————————————————————

행운은 언제나 웃으며 오지는 않는다.

‘행운은 성격이다.’라는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의 말을 20대 초반의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스무 살, 만나던 여자 친구가 나와 헤어진 후 내 친구와 만났다. 성인이 되고서 첫 여자 친구였는데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나에게 이별을 전했다. 당시에 내가 간절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딱 한 번 잡았다. 내가 노력해도 그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인지 물었고 대답은 같았다. 나는 깔끔하게 헤어졌다.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만남의 이별은 딱 그 정도의 슬픔이었다. 견딜 만했다. 내 주변에서 걔만 사라진 거니까. 그러다 카페에서 내 친구와 함께 있는 전 여친을 발견했다. 모두 동네 친구들이었기에 사실 어느 정도 알던 사이였다. 그래서 더 안일했다. 복잡한 이성 문제는 왜 내일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을까? 왜 내 친구들을 소개해 줬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당황한 친구를 두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날에 걷던 길과 축축한 공기 냄새까지 기억한다. 집에 와서 생각을 정리했다. 인생의 반, 1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예상이나 했을까? 우리가 노래방에서 같이 부르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려야 했기에’ 살면서 노래가 이렇게나 공감된 적이 있었나... 나만 불운한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하던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고작 19살에서 한 살 더 먹은 것뿐이었다. 지독한 성인식이었다. 그러곤 일주일 내내 집에서 보냈다. 누구와도 대화하기 싫었다. 세상에서 고립된 듯, 죽은 듯 살아있었다. 잘못도 없는 날 내가 괴롭혔다. 하루는 같이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나에겐 친구 같던 아버진 항상 고민에 대한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진 이미 일주일을 기다리셨을 테니 난 내 상황과 심정을 모두 뱉어냈다. 일주일이나 묵었던 쾌쾌한 감정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위로와 조언을 기다렸다. 아니,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른손을 건네 내 손을 잡으시며 크게 웃으셨다. ‘어른이 된 걸 축하한다. 아들!’ 악수, 웃음, 축하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놀리는 건가?’ 나중에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란 아버지의 말을 당시에 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집에만 있으니 생각은 깊어지고 우울함은 더 심해졌다. 그래서 알바를 했다. 1개로는 부족해서 2개, 3개… 집에 가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알바를 했다. 노래방, 음식점, 술집, 레스토랑, 웨딩홀 세상에 있는 알바는 다 해본 것 같다. 그렇게 돈 버는 재미로 살았다. 일을 많이 하다 보니 힘든 일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딱히 모으려 하지 않았지만 6개월 만에 300만원을 모았다. 사고 싶은 것도, 명품에도 관심이 없던 난 주식을 시작했다. 당시 21년에는 무얼 사든 모든 주식이 다 올랐다. 주식 커뮤니티, 코인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매일 사람들이 수익을 인증하거나 돈 복사를 기원하며 가즈아!!!!!! 를 외쳤다. 그래서 나도 그냥 같이 그랬다. 주식이 뭔지 무슨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주식을 샀다. 그땐 그래도 됐다. 그렇게 두달도 안돼서 300만원이 600만원이 되었다. 돈을 쉽게 버니 점점 겁을 상실했다. 내가 주식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10만원 20만원씩 거래하던 내가 이제 100만원은 우습게 봤다. 주식 계좌에 있던 돈을 한 번도 출금하지 않고 투자만 하다 보니 점점 이게 돈이라기보단 하나의 숫자처럼 느껴졌다. 결국 겁을 완전히 상실한 난 테마주를 거래하기 시작했다. 영상학과를 다니던 나는 관심사에 맞게 주로 영화 제작사를 구매했다. 특정 드라마나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1등을 하거나, 해외뉴스에 나오면 당일에만 2~30% 상승은 우스웠다. 내가 공식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주식창만 들여다 봤다. 학교 수업?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두 달도 안 돼서 내 계좌에는 1100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때 그만했어야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당시에 유아인 주연의 ‘지옥’을 제작하는 회사에 투자했다. 거의 천만 원을 넣었다. 내 인생 가장 큰 거래였다. 난 떨리지 않았다. 오만했다. 주식에 100퍼센트라는 것은 없는데도 난 확신했다. 투자의 성과가 나오는 ‘지옥’의 개봉일이 하필이면 내 기말시험 첫날과 겹쳤다. 걱정과 달리 당일 8시 50분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난 이제 모든 주식을 매도할 생각을 갖고 시험을 쳤다. 시험이 끝나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거래정지였다. 주가의 30퍼센트가 하락했다. 오르기 쉬운 만큼 내리기도 쉽다는 걸 내가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했다. 일주일 만에 1100만원은 300만원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산 주식이 주가 조작이 있었던 종목이라는 것이다. 주가가 조작되는지도 모르고 돈을 계속 넣었던 나는 중간에 추가로 넣은 돈을 포함해서 원금에서는 100만원 정도 잃었지만 고통은 1000만원짜리였다. 주식만 보던 내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동안의 행운은 무시하고 나의 불운함에 집중했다. 나의 불운함에 화냈다.

그래서 친구도 잃고 돈도 잃었던 나는 지금 불운한가? 아니다. 이후 만난 여자 친구와 3년 넘게 만나고 있고, 다시 공부한 주식에서는 작지만 안전하게 투자도 하고 있다. 지금 난 행복하다. 불운은 결국 나의 부주의와 인식에서 온 것이었다. 관계에 대한 무책임과 신뢰 그리고 투자에 대한 무지는 날 불운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불운의 끝은 정해져 있었지만 나의 행운이 그 끝을 조금씩 미뤄줬던 것 같다. 나는 이제 ‘행운은 성격이다’라 주장한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의 말과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한다’라는 아버지의 말도 이해할 수 있다. 불운은 나를 멈춰 세워 묻는다. 내가 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행운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불운은 행운의 반대말이 아니라 행운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은 언제나 웃으며 오지 않는다. 가끔은 울고, 때로는 나의 무릎을 꿇린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된다. 이것도 나를 위한 것이자 언젠가 웃으며 말할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행운과 불운을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불운은 행운의 기준이자 이정표이다. 그건 내게 찾아온 느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