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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겨울

(최종본)

<2016년 1월>

감히 아빠를 울렸다.
어지간해선 얼굴 근육 안 쓰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진짜 한 번만. 미안합니더. 돈 더 내라면 얼마든 낼 테니 제발요... 제발...!”
“제 딸이 이럴 애가 아닌데. 얼마나 착실했냐면예, 5살 때 소풍 도시락도 지 혼자 쌌던 그런 앱니더. 다 제 탓…”

아빠가 우는 모습을 난생처음 봤다. 당신에게 해코지도 하지 않은 그 누구에게 정말 미안하다, 제발 부탁이라며 무릎 꿇고 손바닥을 싹싹 비볐던 아빠. 하필 이런 불행이 나에게 왔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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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했다. 합격 발표만 되면 끝인가? 입시 별거 없네! 대학교에서 알아서 연락 오는가 싶었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했더니 글쎄 3월 개강 전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던지.

입학금 내는 기한은 이미 며칠이나 지났다. 가만히 있으면 합격 의사를 밝힌 게 아니었다. 입학금을 내야 입학 의사를 밝히는 거였다. 왜 아무도 입학금 내라는 말을 안 해줬지! 몸이 너무 뜨거워졌다. 고등학교는 등록금 며칠 늦어도 퇴학 안 시켰으니까. 내일 전화하면 되겠지. 자사고 출신에 면접 점수도 당연 1등일 나를 어떻게 떨어트리냐며.

“딴 건 다 잘하는 애가 하필 그걸 왜 몰랐노. 당장 시동 걸어라”
당신들이 미리 못 챙긴 미안함과 함께, 당장 찾아가자는 말. 다음 날도 아니지. 비 오는 새벽 입학처 가는 길, 아빠가 계속 훌쩍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돼지들이 실린 화물차랑 부딪힐 뻔했다. 사고 나면 입학처에 늦게 도착할 테니 그 어떤 불행도 더해지면 안 됐다.

그 아침, 모든 세상이 무너졌다. 돼지를 봤으니 혹시나 했지만, 행운은 손잡아주지 않았다.
“어? 안 된다고요? 학생은 실수할 수 있잖아요. 입학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빌고 빌어도, 갖은 불쌍한 척 울어도 서울대는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만 탓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믿기까지 족히 몇 주 걸렸다. 나는 감히 그런 실수 할 사람이 아닌데. 이런 실수를 난생처음 한 지라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건지 감도 안 왔다.

나도 내가 알아서 잘할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자책했다.

부모님 맞벌이로 어린이집 소풍 간식과 학교 준비물은 늘 내 손으로 챙겼다. 일찍 철들었다. 어른 글씨체도 물론. 가정통신문 부모님 사인을 도맡아 했고, 조금 덜 어른스러운 글씨체로 친구들의 부모님 사인도 대신 잘해주기로 유명했다. 수행평가, 성적표, 생활기록부, 용돈, 기숙사 생활, 유료 인강. 그 모든 걸 난 내가 알아서 결정했다. 대학까지. 중학교 때 2번 빼고 항상 전교 1등. 자사고에 전액 장학금 지원 받고 입학까지 했으니 반드시 대학도 잘 가야 했다. 동창회 때 빨리 철든 나를 은근히 칭찬했던 부모님을 보며 난 당신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을 최대한 현명히 실망시키지 못한 탓에 불행의 징조가 오래 쌓여왔으면 어떡하지. 훨훨 날아가야 할 소녀에게 하필 이런 시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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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날, 웃으면서 친구들 이름을 부르던 담임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갑자기 우셨다. 담임과 나만 아는 비밀이 눈빛에 터져버렸다. 3년을 믿은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으니. “올해 입학했으면 불행한 일이 분명히 있을 거다. 행운이 있으려고 그런가 봐.” 담임이 마지막으로 한 말. 운도 더럽게 없지. 평생 날짜와 시간에 병적으로 민감한 내가 됐지만. 말대로 그 해 입학식 가는 날, 교통사고로 죽었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부모님과 담임만 안다. 다들 사연이 있어 재수한 줄 안다. 그 사연이 고작 이건 줄은 아무도 모른다. 재수한다고 고급스럽게 미화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기억은 미화된다는데, 이 이벤트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다. 종종 꺼내는 추억도 못 되는 강렬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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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생애 가장 불운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그만큼 불행한 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10년 지난 지금, 가장 불행했다는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나고 보니 별거 없다.

담임의 마지막 말은 말도 안 되는 위로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 꽤 오래 남아있다. 그해 1월은 분명히 가장 불행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무너질 일은 아니었다.

그 후로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불행이라 여기지 않게 됐다. 그저 잘 넘기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 그때가 지금에선 오히려 행운이다. 진짜 무너져봤기에 어떤 무거운 일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다. 로또는 늘 한 줄에 2개까지만, 할아버지 급성 뇌출혈로 1년을 계획했던 미국 여행을 당일 취소. 이런 것들은 그저 일어난 일이고, 해결해야 할 일이다.

“혹독한 시련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종종 위장된 축복”이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에 이제는 동의할 수 있다. 그 불행한 날이,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행운이다.

(12.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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