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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원동력
불운의 틈새에서 마주한 행운
저는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남들은 초등학교 때 시작하는 미술을, 저는 중학교 3학년쯤에야 시작했으니 조금 늦은 편이었죠.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6개월 정도 준비했습니다. 예고에 떨어지면 실업계로 가야 했기에 발이 꼼질거리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다행히 실기에서 자신 있는 주제가 나왔고, 합격했습니다. 주위에서 다들 “행운이 따랐네”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남들보다 준비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겠죠. ‘나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분명 내 실력도 있을 텐데..’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됐든 운도 따라줬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이때까지는 그래도 행운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어쩌면, 행운이 없었다면, 저는 실업계를 다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운에 대해 의문을 가진 계기는 대학 입시였습니다.
저는 ‘보험용’ 원서를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조차 생각하기 싫었기에 원서를 가지고 선생님과 많이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기 싫은 학교에도 원서를 넣었고, ‘죽어도 여기는 오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시험을 쳤습니다. 일부로 감점 요인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제 그림에 다 녹여냈습니다.
정성스럽게 시험을 망치고 돌아와 선생님께 처음으로 혼이 났습니다.
"너 미쳤어? 입시가 장난이야?!!" 화내는 선생님께 저는 당당하게 “다른 학교 붙으면 되죠”라며 호언장담했습니다. 저는 실기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당연히 원하는 학교에 붙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운명의 장난일까요. 최종적으로 제 손에 쥐어진 결과는 모두 예비후보였고, 유독 그해에는 안정권이라 불리던 예비 번호들도 모조리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학교'만 붙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그 학교 말이죠.
며칠 내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 재수란 없었거든요. 가기 싫은 학교에 가게 된 저를 향해 ‘행운이 따랐다’라는 축하와 ‘안타깝다’라는 위로가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행운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행운은 허상'이라 정의한 계기 말입니다. 진짜 행운이란 게 존재한다면 모두가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결과, 완전한 행복이어야지 왜 양면성이 존재하는 걸까요?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갤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갤러리에선 책 발표를 했었습니다. 작가들에 관한 책 한 권을 가지고 각각 파트별로 나누어 발표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고, 당연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대표님께 가장 좋았다는 칭찬도 받았고요. 그 이후 대표님의 지시로 모든 언론 인터뷰, VIP 도슨트, 아티스트 토크가 제 담당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쁘진 않았습니다. 물론 다양한 경험도 좋지만, 지금 당장의 일도 많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 가욋일까지 떠맡아야 하니까요. 더구나 저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부담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싫었던 건 카메라에 제 모습이 찍혀 방송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TV 봤어! 멋있다. 축하해. 방송에도 나오고, 행운이다야~"라고 말했지만, 정작 축하를 받는 나는 너무 싫었습니다. 내 모습이 영상으로 까지 남아버리는 걸 원치는 않았으니까요!
진짜 행운이란 게 있다면, ‘행운’이란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가 기뻐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행운의 양면성을 마주한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갈매기 눈썹의 초상화로 잘 알려진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의사를 꿈꾸던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열여덟 어린 나이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여 전신 골절과 철제 이 골반을 관통해 척추와 자궁까지도 큰 손상을 입는 끔찍한 대형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이후 그녀는 오랜 기간 침대에 누워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침대 위 천장에 거울을 단 이젤을 설치하였고, 자화상을 그리며 예술이라는 세계에 첫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 예술적 운명을 발견한 것. 이것이 프리다 칼로 삶의 첫 번째 행운의 양면성이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강렬한 색감으로 여성의 정체성, 삶과 죽음, 고통과 생존, 지역문화 등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술계는 남성 중심적 시선이 지배적이었고, 그녀는 늘 세계적인 벽화가였던 남편 그림자에 가려졌습니다. 작가 프리다 칼로가 아닌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만 불렸던 것이죠.
프리다 칼로는 사고 후유증으로 세 번의 유산을 겪었고 남편 디에고의 수많은 외도로 정서적 배신과 충격을 받았습니다.(심지어 남편이 본인 여동생과 관계를 맺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녀는 디에고에 대해 “내 인생의 두 번째 큰 사고”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파괴적인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더욱 풍부한 예술적 양분이 되었고, 그녀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 분열된 자아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성의 시각’이란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들어 그녀는 여성의 고통, 신체, 주체성을 시각화한 작가로서 페미니즘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부서졌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라며 삶의 고통 속 부서진 조각들을 예술로 승화했습니다. 예술사적 시선으로 보았을 때 프리다 칼로의 고통과 절망이 그녀를 예술의 상징적 존재로 만든 행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운은 그녀가 평생 고통과 상실이 함께였기에 존재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운일까요?
물론 저와 다르게 확실한 행운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전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한 행운 중 확실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를 좋아합니다. 앨범 단 2장으로 21세기 최고의 R&B 보컬로 평가받는 가수입니다. 그녀는 스물넷 어린 나이에 그래미 어워즈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천재 아티스트라 불렸습니다.
세계적인 음악상, 부와 명성, 시대의 아이콘 등..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확실한 행운을 가진 인물 중 한 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행운의 끝은 공허합니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결국 27살의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거든요.
행운.. 저는 행운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행운은 허상이 아닐까?' 같은 의문이었습니다. 오롯한 행운이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운은 허상이라 생각했을지도요.
어쩌면 행운은 불운과 한 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빛과 그림자와 같이 함께이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요. 앞으로도 저는 행운 속에 공존하는 불운을 발견하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거꾸로 불운의 틈새에서 행운을 찾아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6.5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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