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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

토 나오는 9월이었습니다. 9월 19일로 당겨진 사업 마감, 위에서 던져놓은 신사업 검토, 그로 인한 빈번한 출장, 추석 가족 여행 준비, 밀려 있는 브런치 기획안, 와중에 위염과 장염이 와서 하루는 앓아누웠고, 그저께엔 편도염이 와서 몸살이 작렬했네요.

하지만 지금도 저는 살아있습니다. 매일 모각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살았습니다. 농담입니다. 크리스 기분 좋으라고 한 말입니다. 그래도 모각글을 쓰는 동안 하루 일과에 중심이 잡히는 것을 느낍니다. 온갖 혼돈으로 가득찬 하루하루, 그 마무리는 언제나 글쓰기였으니까요.

소비자로서 저는 좋았지만, 아무래도 모각글이라는 배는 꽤 험한 파도와 폭풍을 거쳐나온듯 싶습니다. 특히 어드밴스드 참여자들은 낭만이라는 악천후에 꽤 멀미를 앓지 않았을지. (저 개인적으로는 서양에서 유래한 한자어 중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크리스도 많은 고통을 겪었겠지요. 그러면서 베이직, 어드밴스드, 거기서도 분리된 그룹들... 몇 개의 시즌4에 비해 달라진 기능들을 업데이트하는 데에도 고생이 많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어려워보이는 건 결국 바뀐 기능에 대한 몇 개 그룹의 ‘사용자 경험’이 교차되면서 어떤 반응을 가져다 줄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문제군요.

세상을 통제할 순 없지만 내 손가락을 통제할 순 있는 법. 어쨌든 그래도 21일차, 오늘까지 글을 씁니다. 매일 날아드는 미션, 여러 글감을 마음에 비추어보는 동안 느낀 게 있습니다. 내가 꺼내어놓는 문단, 문장, 단어 하나하나는 그저 하루 300자 이상의 분량을 채우는데 급급한 건 아니었나, 하고요. 익명의 동물들과 글로 소통하는 동안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 셈이지요. 그 질문은 지금도 바깥에서 제 알껍질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한자어가 있지요.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려면, 알의 바깥과 안쪽에서 어미 새와 새끼가 동시에 알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각글의 여러분 덕분에 제 알이 흔들리고 있으니, 안에서도 열심히 두들겨야겠군요. 다만 저는 조류가 아니니(가끔 자신이 닭대가리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만) 부리 대신 손가락으로 두들겨야 겠지요. 아마 조만간 무언가 깨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새의 다른 특기가 있지요. 토해내는 겁니다. 저는 자신을 꺼내어 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리상담사가 인증한 제 속성이지요. 그렇지만 좋은 글은 대체로 타자의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린 글감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저를 감탄케한 글은 모두 그런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용기내어 토해내보려 합니다. 술을 먹고 토하면 오물이 되지만, 글을 먹고 토하면 다른 게 나오겠죠. 뭐, 이상한 게 나와봤자 오타 정도 아니겠어요.

다만 아쉬운 건, 일과에 치여 다른 분들의 글을 차분하게 읽지 못했다는 겁니다. 앱이 지워지진 않을테니 숨통이 트일 때 차분히 읽어나가려 합니다. 우리의 기록은 아마 앞으로도 남아있을테니까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추워지는 데 감기 조심하시고, 언젠가 또 봅시다. 동물 친구들!

(7.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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