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종착지
이번 시즌 모각글에 재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허전함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때 거의 십수 년 만에, 놓았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적어도 한 두 시간씩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매우 힘들었다. 매일 나를 몰아붙이는 미션의 늪에서 빠져나갈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모각글이 끝나고 나니, 고작 21일간 매일 글을 썼다고 습관이라도 된 것일까?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 허전함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 분명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글쓰기를 매일 하려니 좀이 쑤셨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었다. 나를 뒤덮는 허전함에 더해, 힘겹게 익어가고 있는 글쓰기 습관이 사라질까 두려워 퍼뜩 시즌 5를 신청했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이번 시즌 때는 매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도 시간에 쫓겨 마감 직전에 후다닥 글을 제출하는 습관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런데, 처음 해 보는 인티미디엇 코스는 나를 새로운 늪으로 데려갔다. 내 비루한 글이 책에 실릴지도 모른다니. 불특정 다수가 읽을지도 모른다니! 지난 시즌엔 비교적 자유롭게, 배워간다는 편한 마음으로 썼다면, 이제는 비로소 ‘읽히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이 좁은 공간에서마저도…), 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매일 미션 마감 후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 지난 시즌에는 하트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하트 개수에 집착했는데, 이젠 하트가 하나라도 달리면 감지덕지였다. 이런 누추한 글에 어느 귀한 분이 하트를… 하면서 말이다.
근 일주일이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당장 읽히는 글을 써내야 하는데, 며칠째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문장력으로만 승부를 보기엔 난 그리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니까.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깜빡. 첫 문장의 지옥에서 맴맴 돌다 어찌저찌 완성한 글은 내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간 모각글 오프라인 모임에서 크리스의 조언이자 팩트 폭행을 마구 당해 순살이 되어서 왔다. 밋밋하다. 플랫하다. 무언가 흥미를 확 끄는 요소가 없다. 글이 너무 착하다. 도발적인 문장이 없다. 디테일이 부족하다… 마음은 쓰라렸지만, 내가 봐도 사실이 그랬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단 하루. 그날 집에 돌아와서부터 그다음 날 자정까지 정말 작가라도 된 듯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낭만에 대해 생각했고,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이 ‘아, 첫 문장 뭘로 하지.’였으니까 말이다. 올해 중 가장 치열했던 하루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내용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최종제출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서투른 점투성이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크리스의 신랄한 평가가 아니었다면, ‘내 능력 선에서는 이 정도면 됐지 뭐.’ 하며 원래대로 제출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예리하고도 정확한 피드백 덕분에 최선을 다해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 배웠다. 고마워요 크리스!
이 작은 세계에서의 관계성이 참 신기하다. 우연히 시간이 겹치는 분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몇 번씩 뵀지만, 사실 글에 대해서만 짧게 이야기하고 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않는 터라, 깊은 유대감이 생기진 않는다. 그런데, 이 모각글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함께 글을 쓰고, 글로 소통하면서 참으로 이상하고도 신기한 전우애 같은 게 생긴다. 이 글이 누구의 글인지도 모르는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서로를 지치지 않고 달려갈 수 있게 잡아 주는 것 같다. 끝자락에서야 깨닫는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앞에서 나를 끌어 주었고, 나 또한 내 뒤의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당겨 주었음을.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음을. 21일간, 보이지 않는 어깨동무 속에서 함께 달려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 이 마음을 앞으로도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 우리. 고생 많으셨습니다!
(10.1매)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