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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건물의 외벽을 타고 내려온 햇빛이 그녀의 검은색 구두코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검은색 구두코는 뾰족하다. 그녀는 자신의 구두 굽을 내려다보며 지금까지 숱하게 들어온 뾰족하다는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뾰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은 거의 엇비슷했다. 그렇게 뾰족하게 살아서 사랑받을 수나 있겠어, 하는 표정들. 동경 뒤에 숨긴 힐난, 그보다 조금 더 질이 낮다면 비아냥으로 번질 것 같은 감정들. 그런 눈빛을 인지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선글라스를 자주 꼈다. 검은색 선글라스 속에 눈을 숨겨두니 뾰족하다는 말을 덜 듣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그런 말을 덜 듣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뾰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되었다. 선글라스를 쓴 일 말고는 자신은 변한 게 없는데도.
조금은 밍숭맹숭해진 채로, 거리로 나선 그녀는 바닥에 앉아 구걸하는 남자를 보고,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인 만큼 구걸하는 사람도 많은 곳이었다. 박스에 적힌 문구를 선글라스 안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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