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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훔치기

광명에 위치한 이케아에 다녀왔다. 언젠가는 이케아에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무엇인가 아직 내가 보지 못한 근사한, 그러면서도 마음먹으면 살만한 가구들이 가득할 듯했다. 둘은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핫도그를 먹어보고 싶었다. 그게 다다. 큰 기대까지는 아니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점점 많아진다.
동선은 정해져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다른 사람이 밀고 있는 카트와 부딪치지 않도록 천천히 카트를 끌었다. 내가 끌고 있는 카트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이 끌고 있는 카트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기대에도 최대치가 있다. 카트에도 최대치가 있듯. 기대의 최대치는 어느새 많이 줄어든 걸까. 이제 무언가에 더 많이, 크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도 막상 꺼내놓으면 쪼그라드는 기대를 보기 민망해서 기대를 더 안 꺼내놓는다. 설레도 설레지 않는다. 미워도 미워하지 않는다.
정해진 동선이 있으니 편하다. 주변에 사람이 조금만 차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토요일에 이렇게 평화로운 표정으로 가구를 사러 이케아에 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진작 망했을 것이다. 망하면 안 되지. 핫도그를 먹어야 한다. 만약 오늘 핫도그를 먹었는데 맛있으면 다음에도 또 오고 싶을 텐데. 망하면 올 수 없으니, 이케아는 당분간은 건재해야 한다. 마치 지금 내 옆에 있는 서재처럼.
근사한, 그러면서도 마음먹으면 살만한 서재. 그런 게 이케아에는 있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살만한’ 서재에 눈길이 가는 게 아니었다. 마음먹어도 ‘사기 힘든’ 서재, 그러니까 내가 최대치로 정해놨던 금액을 뛰어넘는 서재에 눈길이 갔다. 결이 살아 있는 원목으로 짜인 서재. 가까이게 가서 손대보았다.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기본적으로 오염에 강해 보였다. 나는 잠깐 서재에 기대 오후 세 시의 햇살을 맞으면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무겁고 큰, 그러나 읽어야만 하는 책과 씨름하는 늙은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배가 고팠다.
핫도그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기대를 꺼내놓지 않길 잘했다. 핫도그를 다 먹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으려고 했다. 계산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고, 난 이렇게 줄을 서서 먹을만한 핫도그는 아닌데 이걸 왜 먹고 싶었을까, 하는 침울함도 잠시. 나랑 같이 걸었던 사람이 아직 옆에 있다. 저녁으로 뭐 먹을래, 하고 나에게 환한 얼굴로 묻는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오후 세 시의 햇살 따위...

(6.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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