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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훔치기

사주 보러 가자. 최근 친구 하나가 제안했다. 바쁘다는 말을 빙자해 완곡한 거절을 표했다. 사주는 태어난 시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관에 간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평소 점술을 믿진 않았지만 마침 내 앞날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나이 든 선생이 앉아 있었다. 선생은 생년월일을 물었다. 이를 종이에 받아적고는 알 수 없는 한자들을 들여다봤다. 안경을 벗고 얼굴을 매만지더니 내가 "공직에서 일할 팔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났다. 삶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사회과학 서적을 종일 들여다봤다. 평생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싶었지만 앉아서 하는 공부는 다소 지루하고 따분했다. 특정 직업이 떠올랐다. 준비했고, 됐다. 공직에서 일할 거란 선생의 예언은 빗나갔다.

사주는 미신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 당장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태어난 시간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의아한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시내를 걸었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주·타로·운세' 문구가 적힌 가게들 앞에 많은 사람이 줄 서 있었다. 대다수가 내 또래였다.

먹고살기 팍팍하다. 취업은 어렵고 현실은 암울하다. 사주를 찾는 이유 대부분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고 나 또한 그랬다. 원서를 낼 기업 명단까지 추려가는 경우도 있다는 걸 보면 그 이면엔 취업난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사회적 논의가 요구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취업난으로 미신에 의지해 불안을 떨치는 이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시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결단만 하면 풀 수 있다. 거대한 운명 예정설을 만든 것도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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