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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훔치기
전화를 걸었다. 영어 인사말이 들려왔다. 주저하다가 영업 중이냐고 한국어로 물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반응하는 상대방의 태도에 다시 영어 문장을 주섬주섬 꺼냈다.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방도가 없어 전화를 끊었다. 멀지 않아 바로 가보기로 했다. 베트남 요리 음식 사진이 복도 가득 붙어있었다. 달큰하고 생경한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가게에 들어서니 주문도 하지 않은 채로 젓가락을 들고 싶었다. 침이 고였다.
메뉴판을 받았다. 찬찬히 훑었다. 가격표 없이 사진과 메뉴 이름만 인쇄되어 있었다. '삼격산 불고기, 모듬샤쁘, 돼지귀에 게물었다, 새우 스프링ㄹ롤' 같은 궁금한 메뉴들을 지나치고 쌀국수를 두 그릇 시켰다. 어른 머리만 한 그릇이 나왔다.
고기 이불을 덮은 국수였다. 꽃 모양으로 깎은 당근 두 점이 눈에 띄었다. 저도 모르게 귀엽다고 감탄하니, 옆에 있던 사장님이 싱긋 웃으셨다. 통화로 주고받은 당혹은 없던 일이 되었고 마주 본 얼굴에 미소만 번졌다. 먹기 전인데도 속이 푸짐해졌다.
고기를 뒤적여 면을 들어 올렸다. 말끔하지만 끌리는 맛이었다. 덜어도 덜어도 나오는 면을 한 움큼씩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릇째 들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물을 마셔도 양이 줄어들지가 않으니 약간의 오기가 생겼고, 맛있는 음식은 다 먹어 치움으로 경의를 표한다는 신념이 이행하기로 했다.
계산대에 섰다. 캐릭터 계산기가 있어 버튼을 눌러 봤다. 사장님이 웃으며 계산기 전원을 켜줬고 부응하기 위해 헤헤 웃으며 한 번 더 눌렀다. 어느 나라 말로 말해야 할지 몰라서 더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 조금은 귀여워하게 된 것 같다.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왔다.
맛있다고 연거푸 내뱉었다. 며칠 찜찜했던 기분이 온데간데 없었다. 콧노래까지 나오는 걸 보니 어련히 만족스럽나보다. 지난 몇 달 간, 바쁘다는 핑계로 불만족을 살피지 못했나 싶어 조금 반성했다. 뭐든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맛있는 걸 자주 가까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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