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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훔치기

자냥이 병역 거부재판 중이다. 친구 스토리에 그의 소식이 올라왔다. 우리는 동물권 운동가 하루의 컴필 앨범 소개날 처음 만났다. 그날 자냥은 하루와 동행했다. 인상적인 패션의 자냥과 하루는 등장만으로 눈길을 끌었다. 둘은 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소근거리며 비건 샌드위치를 먹었다.
동물권 운동은 해방운동이다. 우리 모두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해방은 연쇄적으로 다른 해방으로 이어진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해방에의 열망이 강하면 해방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활동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해방되고 싶은 나는 모두가 해방되는 날을 위해 뭐라도 하는 쪽을 선택한다. 하루는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방식으로 자냥은 음악 만들어 부르며 그리고 나는 일상에서의 선택으로 각자 해방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린 가끔 인스타 스토리로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그러다 어느날 그의 계정이 사라지고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 얼마전 친구들의 인스타 피드에 그의 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냥의 병역거부 재판의 양형을 올리기 위해 탄원서가 필요하다는 부탁의 글이었다.
부유층, 권력층 자제들은 병역 의무에서 잘도 빠져나간다. 맘만 먹으면 면제나 대체 복무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냥에게는 인맥도 자원도 없다. 사랑하는 연인 까루와 전국에 흩어져 동물권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그는 쉽지 않을 걸 알면서도 병역을 거부하고 재판을 받는 쪽을 선택했다. 2월에 시작한 재판은 11월 27일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두번의 재판이 열렸고 검사는 자냥의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전 판례상 그는 '병역거부가 아닌 병역법위반이다'이라 명시하며 징역 6월을 구형했다. 만약 이대로 형을 확정받으면 6개월 복역후 입대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싶어 한다. 어떤 이유로든 1년 6개월이상의 형을 받으면 군 복무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에게 최소 1년 6개월형을 내려달라는 128장의 탄원서가 모였다. 그는 군대에 가느니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몇년 전의 나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이 상황을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선택이 신념(믿는 마음)과 관념(견해, 생각)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나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고기를 먹기 어렵다. 고기 냄새도 견디기 힘들다. 생고기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 눈을 감는다. 고기, 물고기였던 것들이 동물종, 물살이로 인지된다. 공부와 경험이 내 신념과 관념을 변화시켰다. 그러자 선택이 변했고 이젠 고기를 보면 생명이 바로 연상된다. 자냥에게 군대의 이미지는 폭력과 전쟁이다. 일상이 강압이고 폭력인 어떤 특수한 환경조건이다. 전쟁, 살육, 국가 폭력 같은 것들로 이어지는 생각에 그는 참기 힘들만큼 괴로워진다. 내가 생고기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 눈을 감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게 그가 병역을 거부하게 된 경위다.
1년 전 기후정의 행진때 버스에서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았던 마냗도 자냥과 같은 병역거부자이다. 마냗은 취미로 한시를 짓는 자연과학 전공자이고 동물권 운동 단체의 핵심멤버이기도 하다. 나는 친구들로부터 그가 군대 대신 감옥 갈 결심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내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군대대신 감옥을 가려 하냐고. 그는 군대로 상징되는 국가 폭력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현하기위해 오래 전 병역 거부를 결심했다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 보며 말했다 . 그의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폭력없는 지구를 꿈꾼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상의 모든 선택과 활동이 그것을 위해서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사실 그를 말리고 싶었다. 병역거부만큼은 하지말라고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날 설득을 당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언젠가 마냗이 병역거부재판을 하게되면 탄원서를 쓰고 그의 편에 서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역시 그와 같이 폭력없는 지구를 꿈꾸는 사람이라서다. 기후정의를 위한 행진을 하러 같은 버스에 오른 것 처럼말이다.
일상적으로 노출되면 무엇이든 당연시 된다. 우린 국가 폭력을 비롯한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않는다. 명분, 대의를 앞세워 폭력이 권장 되기까지 한다. 문제는 폭력은 행사되기 시작하면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른다. 불길처럼 삽시간에 퍼져 괴물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가 겪은 사회적 참사들과 개인적인 불행으로 치부되는 국가 폭력들을 생각해보면 언제 무서운 일이 나에게 닥칠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보다 조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자냥과 마냗은 군대가 싫다. 그들에게 입대를 강요할 논리가 없다. 감수성을 문제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그들에게 병역법을 통해 입대를 강제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해가될 것을 분명 알면서도 병역의무를 거부하며 저항하는 쪽을 선택했다.
마냗에게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병무청은 그가 연기조건을 상실하면 가차없이 그에게 입영통지서를 날릴 것이다. 나는 그날이 너무 빨리 올까봐 걱정스럽다. 마냗이 병역거부를 인정받을때까지의 과정이 지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병역법 위반자가 된 자냥의 일상은 많은 부분에 제약이 생겼다. 그는 누구도 해친 적이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위험인물 취급을 받는다. 친구들과 지구를 자신의 방식으로 보호하고 싶어하는 무해한 존재인 그가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소외당한채 죄인이 된다. 모두에게 해를 끼치며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해가는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다. 자냥이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짧은 시간안에 병역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가 바라는 대로 1년 6개월형을 받았으면 좋겠다. 11월 27일(선고일)이 14일 남았다.

(14.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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