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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구근이' 그의 이름이었다. 사실 그의 이름은 '국원'이었는데, 경상도 사투리가 묻은 아저씨들은 그를 '구근이, 구근이'라고 불렀다.

구근이는 대머리였다. 아, 따지고 보면 대머리는 아니다. 구렛나룻에 매달린 몇 가닥이 간신히 숨을 연명하고 있었는데, 바람이라도 불면 언제라도 그의 두피를 떠날 준비를 하는 폼이었다. 땀에 젖어 색이 한껏 빠진 사파리 모자를 늘 쓰고 다녔고. 모자를 벗기 전까지는 그 속의 상태를 당최 알아볼 수가 없었으나. 날이 너무 뜨겁거나, 주워진 할당량이 너무 많거나 하면 참지 못하고 벗어던져 그 헐빈한 잔디밭에 햇빛을 쐬어주는 것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거북이의 눈을 닮아서 눈꺼풀에는 여러 겹의 주름이 층처럼 쌓였는데, 외안각은 이상하게 또 높게 솟아 있어 언뜻보면 사자나 학의의 눈을 닮아 보이기도 했다. 표정을 짓는 법은 거의 없었으나, 입꼬리가 위로 말려있어 부처의 미소가 늘 흐릿하게 보였는데. 입을 열기만 하면 상스러운 욕설을 단어 사이에 마구 섞어쓰는 바람에, 겉모습만 자비로운 것처럼 속여대지. 속의 실상은 사탄의 미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자주색과 형광색, 갈색 같은 것이 촌스럽게 섞인 기능성 의류를 입고 다녔고, 바지는 작업복이 하나 뿐인지 언제나 흙이 가득 묻은 브라운 면 바지만을 고집했다. 그에게선 곰팡이를 처바른 것 마냥 쿰쿰한 습기가 올라댔고, 거기에 더해 담배와 술, 지긋한 나이가 블랜딩되어 영락 없이 끔찍한 냄새를 풍겼다.

구근이는 원래 어디 기자 출신이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공사장 한 복판에서 삽이나 뜨는 처지다. 그런 탓인지 그는 새참 때마다 단연코 정치 이야기를 즐겼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 너도 나도 기싸움을 하는 탓에. 온 나라가 그 이야기로 북새통인지라, 새참 때마다 눈 앞에서 사탄이 재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나라가 씨발 어떻게 되려고. 씨발. 다 빨갱이 새끼들 때문이지. 씨발거."

그는 소싯적 치고 다녔던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는데, 1980년도에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도 '사실 빨갱이들의 개입이 있었다', '빨갱이 새끼들이 나라를 좀 먹으려 굴을 파고 쳐들어와 미리 계획한 것이다'라며. 지금의 사태가 당시의 전두환 정부가 빨갱이 새끼들을 싹 다 잡아 쳐죽이지 못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땀이 비오듯 흘렀고, 그의 얼굴이 붉었다.

"좆같은 년들. 개같이 더운데 물 한 병을 안 주냐. 씨발년. 이따구로 사는거 보면 집안 마누라 꼬라지도 알만하다. 개같은 년." 화살이 괜히 남의 집에 꽂혔다.

펜을 놓은 지 오래 되어, 그의 손에서는 흑연 가루의 냄새나 볼펜 잉크 자국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는데. 입을 열 때마다 어느 신문, 어느 기자, 자기가 썼던 기사와. 그 기사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 대단한 삽을 잡고 설파했다. 파내고, 부수고, 뽑고, 두드리고, 내려쳐온만큼 과거 펜을 잡았던 손은 더 뭉툭해졌다. "씨발, 좆같이 일 안 되네." 그의 일은 여전히 삽 밖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글쟁이가 펜을 놓았을 때.

다 쓰고 나서 주제를 다시 보니, 잘 못 썼네요. 하하. 죄송. 합니다. 글을 놓아도, 여전히 글을 쫓던 아저씨와의 노가다 일화를 썼습니다만. 잘 못 썼네요. 하하. 엉엉 바보가되 죄송합니다 여러뷴

(8.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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