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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다

아벨의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번의 타격으로 멈춰버린 그의 몸과 시간이 땅을 향해 무너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힘차게 아벨의 몸을 돌고 있던 피가 대지 위에 쏟아졌다. 아벨의 피는 목적지를 아는 것 처럼 검붉은 길을 만들며 땅으로 흘러들어갔다. 피의 길을 멍하게 바라보던 카인은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에 압도당해 붉어지고 있었다.

‘내가 받아야 할 사랑이었어.’

아벨은 카인이 받았어야 할 부모의 사랑, 그리고 신의 사랑까지 모두 빼았아갔다. 카인은 더 이상 빼앗기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벨만 없으면 카인은 모두의 인정과 사랑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아벨의 숨이 희미해지는 걸 보며 카인은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순간 카인은 사랑이나 인정따위 더 이상 필요없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이곳의 신이 되면 되는 것이었다. 아벨을 죽이기 전에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인은 몸에 묻은 아벨의 피를 닦으며 숨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쳤다.

카인은 아벨을 죽인 자신에게서 완전히 뒤돌아 섰다. 이 모든 것은 동생과 자신을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았던 부모와 신의 탓이었다. 보호를 이유로 신이 그의 이마에 낙인을 찍을 때 카인은 생각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어.’

카인은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채 신의 낙인을 받았다. 낙인은 카인을 지켜줄 표식이 될 것이었지만 동시에 살인자임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땅에서 쫓겨나 광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카인은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는 금새 자신의 부족을 만들었다. 부와 힘이 그의 것이 되자 아들들은 그의 낙인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하게되었다. 카인이 살인자라는 사실은 시간과 함께 완전하게 잊혀져 갔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지지 못하게 하라.’

카인의 후예들은 매일 아침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 카인의 아들에서 아들로 문장은 전승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배워나갔다. 카인의 후예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욕망에 충실한 쪽으로 진화했다. 그들이 욕망하는 것들은 전부 그들의 것이 되었다.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무도 가질 수 없었다. 카인은 후손들의 정신에 새겨져 마침내 신이 되었다. 카인의 후예들은 카인처럼 욕망했고 카인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았듯 무슨 일이든 했다. 카인의 후예들은 이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카인의 후예들중 어떤 그룹에서 ‘변이’가 발견 되기 까지는 말이다.

(6.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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