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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우리는 모각고등학교 삼총사였다. 세 명 무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을 반증했다. 성격도, 외모도, 환경도 달랐지만 순수한 마음 하나만은 잘 맞았다. 쟤 오늘 똥 못 쌌대. 이런 실없는 소리에도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얼마나 붙어 다녔으면 학교 선생들까지 떨어지라 할 정도였다. 그때 나는 몰랐다. 이 친구들의 아픔을. 너무 어렸다. 좁은 세상만 볼 줄 알았다.

지민이는 소위 ‘있는 집’ 자식이었다. 아빠는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였고 엄마는 대학 교수였다. 집은 우리 집의 두 배였다. 각종 상패와 값비싼 앤틱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갈 때마다 놀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너희 집은 부자라 걱정 없겠다.” 지민이는 웃기만 했다.

현재는 평범했다. 놀랄 만큼 평범해 보여 어색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1등을 줄곧 놓치지 않았다는 것. 시험을 본 날 아이들은 현재의 책상으로 모였다. 1번에 2번, 2번에 4번. 현재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답을 불러주곤 했다.

3학년이 되고 지민이는 압박에 시달렸다. 쉬는 시간에도 참고서만 봤다. 점심을 먹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한 번은 지민이의 가족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현재도 있었다. 지민이의 엄마는 현재에게 말했다. “우리 딸도 너만큼만 하면 좋을 텐데….” 얼핏 들었을 땐 부러움 같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건 눈치 주기였다. 기가 죽은 지민이의 표정이 아직도 떠오른다. 지민이는 늘 되뇌었다. “S대가 아니면 안 돼. 정말로.” 지민이의 아빠, 엄마, 오빠 모두가 S대 출신이었다.

12월. 대학 합격증을 받은 친구들이 날아다닐 때였다. 현재는 의대에 붙었다. 지민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S대는 아니었다. 며칠 뒤 늦은 밤 전화가 왔다. “하루만 너희 집에서 자도 될까.”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수면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온 지민이는 나를 보자마자 대성통곡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였다.

성인이 되고 우리는 각지로 흩어졌다. 지민이는 서울로, 현재는 충청도로 떠났다. 나는 대구에 남았다. 얼마 안 있어 지민이의 자퇴 소식을 접했다. 부모님의 권유라고 했다. 추석에 내려오면 술이나 먹자. 내가 제안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민이는 끝내 답장하지 않았다. 결국 현재와 둘이 보게 됐다. 소주 네 병을 비웠나. 발음이 슬슬 꼬여가기 시작할 때 현재는 말했다. “사실 나, 맞고 자랐어. 악착같이 공부한 이유도 그 이유야. 어쩌면 지민이보다 더. 그래야 대구를, 집을 뜰 수 있으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평범해 보였던 네가, 이제 그만 평범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 후 지민이는 독일로 떠났다. 현재는 본과 공부로 바빠졌다. 각자의 상황으로 자주 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홀로 대구에 남은 나는 가끔 두 사람을 떠올린다. 우리가 웃고 떠들 때, 그런 아픔이 있었는데 왜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냐고. 어떤 압박에 시달린 거냐고. 이젠 평범해졌냐고. 그러길 바란다고. 이런 오만한 생각 따위를 하며.

(7.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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