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無
각인(刻印)효과
21일 동안의 글쓰기 여정을 하는 동안, 불현듯 떠올라 맴돌았던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욱하게.
14살 무렵, 글쓰기 꿈나무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름 각 학교에서 글쓰기로 이름을 좀 날린다는 학생들이었죠. 우리는 그 수업을 듣기 위해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주말 아침, 택시를 타고 꼬박 15분을 가야했습니다. 중학생에게는 핑계라는 유혹을 아침마다 이겨내야 되는 꽤나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 수업에서는 매번 글을 쓰고, 각자의 글을 발표하며, 가장 잘 쓴 사람은 작가(선생님)님의 선택을 받게 됩니다. 선택을 받은 자는 다음 시간에 그 글을 다함께 수정해보고 다듬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1년 간 수업을 들으며, 딱 한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미친 필력을 가진 16살의 언니였습니다. 어떤 글을 썼는지는 한 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니가 발표를 하면 모두가 "와-"하며 벙쪘던 것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제 글을 발표하는 순간에는 제발 언니 뒤에만 하지말라 달라 빌기도 했습니다. 다만, 더 듣고 싶은데 자주 나오질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마저도 나왔다하면 모두 작가님의 선택을 받았으니, 넘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비루했습니다. 한번의 선택도 받지 못했었거든요.
마지막 수업 날, 제가 쓴 글이 모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글이 가장 잘 쓴 글로 선택된 것입니다. 모두가 내 글을 분석하고, 비틀고, 분해하는, 이런 시간이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수업의 말미 쯤, 작가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유정아, 나는 너같은 사람이 성공한다고 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온 사람. 모두가 그 언니를 부러워하지? 하지만, 성공은 너같은 사람이 하는 거야. 꾸준함. 책임감. 그게 훨씬 대단한거야."
사실, 저는 호불호가 강합니다. 좋은 것만 찾아다니지 하기 싫은 것은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게을러서 무언가를 진득하게 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왜 저런 말을 하셨을까. 이번 모각글을 하며 깨달았습니다. 호불호와 상관없이, 남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일"에 한해서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해내왔던 것을요. 스피치 단체에 들어갔을 때, 모두가 본인의 영상을 찍고 공유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저는 아파서 열이 펄펄나는데도 기어코 찍어서 올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30명 중 고작 10명 정도만 제출했던 그 미션. 사실 가벼운 동아리일 뿐인데, 핑계거리를 찾을 것이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핑계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죠. 당연히 해야되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14살 무렵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 들며 21일 간의 긴 여정을 함께 했던 모각글도, 모두 제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랬기에 저는 늘 그랬듯 핑계 보단 당연함을 우선시 했을 뿐입니다. 당연하게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당연하게 들어왔으니 해야되는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작가님이 해주셨던 말이 마음 속에 각인되어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자꾸만 들여다보게됩니다. 지금처럼, 내 선택을 부끄럽지 않게 책임지려고요. 그리고 혹시 성공할까 싶어서요.
ps.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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