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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점과 단점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약점과 단점을 쓰라니, 한껏 멋부렸는데 드레스코드를 잘못 맞춘 것처럼 식은땀이 살짝 난다.

자기소개서를 쓸 땐 단점보다 장점 쓰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솔직해지자고 다짐을 하니 말 그대로 사람이 누추해지는 것 같다.

나의 약점, 거절을 못 한다.
나의 단점, 게으르다. 어마무시하게 게으르다.

거절을 잘 못 해서 남의 일을 대신해주다가 내 일을 못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기다가 게을러서 일을 몰아서 하는 타입이니 상황은 최악 중의 최악.

나는 요즘 논다. 일을 시작한 지 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대놓고 쉰다. (실제로 아팠었고 지금은 안 아프지만)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일을 쉬고 있음이 그럴듯한 근거가 되어 주었다.

한 때 내 꿈은 '일한 만큼은 벌고 싶다'였다. 위계로 꽉 찬 곳에서의 '부탁 아닌 부탁'은 곧 명령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부탁'을 거절하면 '그 부탁'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갈 것이 뻔했다. 그것이 내가 거절하지 못한 이유였다. 폭탄돌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탁을 이행하느라 내겐 시간도, 여유도 크게 남지 않았다. 이제 '내 것'을 열정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럴 때면 이미 내 몸의 배터리는 방전 직전이었다. 게으른 것도 사실이지만 게을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려던 일이 든 가방을
집에 들고 들어왔다가
그대로 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누군가에게 나는 착하고 착실한 사람이었겠지만.
내게 있어 나는 외부의 영향력에 민감하고 무력하며 게으르고 싫은 티도 못 내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이다.)

(4.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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