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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기로 했다. 열심이어봤자. 고되고 씁쓸하고 외롭기까지 했다. 시큰둥하게 있자니 진정성을 의심받을 것 같아서 웃어보기로 했다. 헤헤, 상관없어. 금방 들킬 것 같아 상관있는 것들은 상자에 처박아두기로 했다. 그런 거 못 가져. 쳐다보지도 마. 상자에 걸터앉아 헤헤헤헤 계속 웃었다. 친구들은 죄다 결혼하거나 집을 사거나 뭐든. 가졌다.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없으니 헤헤 웃을 수 있었다.
시퍼렇게 욕망만 서린 사람들이 잘 살고 마음 아플 일은 차고 넘쳤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속상할 때면 눈물을 참고, 콧물로 변한 눈물을 훌찌럭거리면서 소매로 훔치면 그만이었다.
너무 작은 나. 가진 게 없는, 잘하는 게 없는 나. 상자 속에 처박힌 것은 여전히 눈부실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뭐든 잘하고, 잘났고, 사회정의도 척척 지켜내며, 꿈꾸던 것도 해내고….이제는 정말 상관이 없다. 상관있는 것들이 활개를 치며 나를 괴롭게 해도 상관없다. 헤헤거리며 훌쩍거리며 스스로 괴롭게 한 시간이 신물 난다. 상자를 연다. 훨훨. 아무 영향이 없으면 어때. 아무 말을 못 해도, 손 한 줌 못 뻗어도 어때. 몇 줄 써갈길 생각하면 조금은. 남루하고 있어보이는 척하고 싶은, 이런저런 나를 보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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