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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래야. 이번 주 토요일, 우리 한일극장 앞에서 만나자.

미안하다. 취재하러 경산까지 가면서도 네가 일하는 건물을 지나치기만 했어.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 번 안 했지. 사실 너를 보기 창피했어.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비겁해서.

글을 잘 쓰면 뭐가 좋을까. 오늘 글쓰기 미션으로 받은 주제다. 신기하지. 언젠가 우리 학보 편집회의에서 토론한 얘기잖아. 넌 타인을 설득하기 수월하다 말했지. 네가 든 논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좋은 글은 부조리에 맞설 수 있다고. 너를 인간답게 만들고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했어. 솔직히 처음엔 삐뚤어진 생각을 했다. 우리 주제에 무슨 세상을 바꾼다고. 고작 학부생이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기사 쓸 때도 많이 부딪혔나 봐. 넌 무겁고 갈등을 주제로 한 글을 선호했고, 난 잡지에 나올 법한 말랑한 글을 좋아했지.

그런데 나, 이제 너랑 궤를 같이한다. 글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려 해. 대단한 지식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도. 너도 알겠지만 2024년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며칠 전 일어났어. 처절한 시절은 대선배들이 활동할 적 끝난 줄 알았는데. 누군가 말하더라. 그런다 한들 보수의 심장이, 우리의 고향이 바뀌겠냐고. 하지만 대학 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성명문을 썼어. 그걸 본 많은 시민이 동성로로 나왔고. 이제 네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누가 쓴 글이라도 잘 쓴 글은, 정의롭고 진정성 있는 글은, 인간과 세계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대구의 시인 이상화는 물었지. 이에 대한 답은 내 몫이 아닐까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너에게 용기 내려 해.

우리 만나자. 이번 주 토요일, 춥고 냉혹할지도 모르는 날, 한일극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단 소린 안 할게. 그러지 않아도 넌 나올 사람이니까. 우리, 내년엔 대구의 봄을 같이 보내자.

그때까지 몸 성하게 조심하고. 너도 연락 좀 해라. 그럼, 토요일에 만나ㅈ
(나는 편지를 찢어버렸다.)
(나는 경산으로 갔다.)

(5.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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