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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 애인은 꼭 열대어같다. 전 애인이 놓고간 어항처럼. 들어보면 엄청 무겁다. 한 20리터 정도된다. 그래서 존재감도 크다. 어항은 내 방 구석에 있다. 방에 이상한 계절이 있다. 영원한 열대인 바다가. 한 대야 정도의 존재감으로. 잘못된 계절을 상기 시킨다. 거기는 언제나 축축하다. 여름이다.

열대어는 살아있다. 먹이를 준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물속에서 숨쉰다. 알수없는 호흡법으로. 망각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또 본다. 짜증난다.

나는 열대어가 신경쓰인다. 눈치를 본다.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아서. 근데 개뿔. 나를 신경도 안쓴다. 나는 몰래본다.

열대어의 짜증나는 점. 똥을 아무데나쌈. 싸면서 돌아다님. 내가 보는데 신경도 안씀. 자연스러움. 밥먹고 냅킨으로 입 안닦음. 그래도 예쁘다.

전 애인 인스타를 끈다. 어떻게 물속에서 사냐. 여전히 예쁘다.

(2.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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