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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죽었다. 답이 없다. 묻기 전이었다. 물을 생각도 없었다. 몇 년만이다. 프레임 앞에 섰다. 울지 않는다. 나는. 망친 여행을 생각한다. 나의. 사라진 유년을 생각한다. 꽃을 내려 놓는다. 과거가 추락한다. 관까지. 관 아래까지.
소리쳤다. 화냈다. 때렸다. 내쫓았다. 차별했다. 못본 체 했다.
귀를 막았다. 울었다. 맞았다. 맨발이었다. 눈치를 봤다. 허공에 간절했다.
가엾은 영혼. 꿈에서도 맞는다. 또 운다. 어른이 된 내가. 소리친다. 짐승 소리가 난다. 자세히, 잘, 모른다. 기억이 흐리다. 삭제된 장면. 덩어리진 시간. 이해하라고 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용서 하라고 한다. 나에게 없는 일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한다. 입을 잘라버리고 싶다. 쉬운 말은 역겹다. 어린 나를 모욕한다. 쿵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쿵. 쿵쿵. 쿵. 현관문은 딱딱하다. 손이 발개진다. 보는 눈이 많아도 똑같다. 당신. 당신 아는 사람. 당신 모르는 사람.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울다가. 입술을 꽉 깨문다. 피 맛이 난다. 나는 모든 눈을 피한다. 고개를 자주 숙이게 된다. 바깥은 춥다. 새까만 괴물같다. 발 둘 곳이 없다. 딱딱해진다. 퍼렇게 되기도 한다. 겨울마다 동상에 걸린다. 큰 젓가락이 친다. 작은 젓가락은 무안하다. 젓가락. 아니 숟가락으로. 맨밥을 퍼먹는다. 불 끈 방안에서. 이불 속에서. 짠맛 나는 밥. 오래 씹는다.
아. 아아. 내가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없는 일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 없는 당신이다. 세상에 없는 아이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 나는 죽었다. 당신이 죽기 전에. 훨씬 더 전에. 내가 죽었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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