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블럭 수집2

내가 느꼈던 사랑의 순간을 하나 떠올려본다.

무척 더운 한 여름날이었다. 지역 센터에서 여름 동안 듣는 수업이 있었는데, 당시 애인과 나는 장거리연애 중이었다. 그날도 난 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었는데 애인에게 문자가 왔다. 어디냐고.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얘기했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애인은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탔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갑자기 밖으로 나와보라는 문자가 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면서 나갔는데 웬걸. 애인이 문 앞에 서있는 것이었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버스도 거의 없는 이곳에. 기차역에서 걸어오면 20분 정도 걸리는 위치였다. 1분만 걸어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였는데, 당연하게도 그의 티셔츠는 땀에 절어 축축했다.
내가 어쩔줄 모르는 그와중에 가방에 손을 집어넣더니, 그가 꺼낸 건 해바라기 한 송이었다.

나는 그 때 내가 무장해제되었다고 생각한다. 사귀기 초반이라 새로운 사람에 대한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도 공존하던 때,
그 순간 처음으로 그에 대한 사랑의 새싹이 돋아난 기분을 받았다. 해바라기의 꽃말이 떠올랐다.
이 더운날, 그저 나에게 기쁨을 주기위해 그 멀리서 기차를 타고 온 그와 해바라기가 겹쳐보였다.
놀라서 콩닥거렸던 그 마음과 기뻐서 환하게 웃게됐던 그날, 사랑에 대해 조금은 알게된 것 같다.

저 당시 경험을 통해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수고로움을 감수하는지를 통해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것일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는 것.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쓰고.. 어쩌면 사랑은 비효율적인 것?
추운 날씨에 애인의 패딩 지퍼를 잠궈주는 것도 그렇다. 자신이 하면 더 빠를텐데도 상대방에게 기꺼이 맡기고 기다려주는 것.
사랑은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비효율적이어서 아름답다.
사랑이 아니라면 인간이 굳이 비효율적인 일들을 택할 경우는 없을테니까.

상대방에게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

(5.0매)

4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