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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부제 <애쓰면 악쓴다 or 기꺼이 먼지로>
[쓰다.]
나는 천장이 무너질까 겁난다. 가스 밸브는 잠궜었나. 눈을 감고 다시 호흡하면, 천장. 또다시 천장. 어떤 날 나는, 누군가 숨기고 있는 날카로운 한마디에 댕강 잘려 나가고,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에 호흡이 가빠지며, 걸어가는 내내 손이 떨려온다. 어떤 날 나는, 눈만 감으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생하게 보여 이불을 덮었다, 걷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어떤 날 나는, 상담원의 짜증 섞인 말 한마디가 나를 휘감아 뾰족한 바늘의 형태가 되어 나를 마구 찌르고 쑤셔댄다. 별것도 아닌데. 별 것들이 모여 나는 눈을 감지 못한다. 혹시 천장이 무너지려나. 혹시 집에 불이 나려나. 그리고 혹시. 다시 혹시.
[애쓰다.]
티나지 않는 나의 뾰족하고 검은 혹시의 굴레. 그것은 사실 무수한 사랑 조각들의 집합체이다.
사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작은 결핍이다. 재밌게 놀다가 휙 돌아가는 저 친구를 우리 집에 기어코 데려와 같이 더 놀자며 붙잡았고. 영어 학습지 수업을 할 때에는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에 혀를 얼마나 굴려 댔는지 모른다. 친구들과 싸우고 멀어진 날엔, 세상을 잃은 것 같았고 유리잔 같은 가족에게 기댈 환경은 더더욱 아니었다. 첫번째, 나는 부족한 사랑의 조각이 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딱 맞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사랑 말고 일에 집중하자. 그때 그가 나타났다. 2년 째 만나고 있는 그는 여전하다. 무거운 짐은 박박 우겨서라도 들어주고, 발목이 삐끗하며 넘어지는 모습에 진심으로 걱정해주며, 내가 차에 타기도 전에 엉뜨는 늘 켜놓는다. 똑똑하고 당찬 나의 모습보다는 약하고 바보같은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놓는다. 우리는 심연의 끝에 맺힌 그 마음의 생김새가 너무나 닮아 있다. 두번째, 나는 넘치는 사랑의 조각이 있다.
나는 업은 평가가 필연적이다. 보고하고, 판단하고, 수정하고, 내쳐지고, 주워담고, 다시 완성한다. 9개의 좋은 평가는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1개의 비판인 척 하는 비난. 냉철하고 차가운 찌릿하는 목소리. 따뜻함 뒤에 숨겨진 매서운 눈빛. 그것들만 가득 남아있다. 그것은 메아리처럼 번지는데, 업을 벗어난 순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 행동이 삐뚤 했을까봐, 내 언행이 뾰족 했을까봐. 화살촉은 나를 향해 있다. 세번째,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조각이 있다.
[악쓰다.]
부족해서 채워 넣기 바쁘고, 넘치니 쏟아질까 두렵고, 외면 받진 않을까 늘 조마조마했다. 이 사랑조각들이 가장 무서운 것은, 갈망,우울,탐욕,비교,슬픔,분노,외로움 같은 단어들과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 조각들은 부서지듯 흩어져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들을 찌르고 있었다. 어릴 땐 피가 나면 슬쩍 닦아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닦이는 것이 아니었다. 점점 뭉쳐 어느덧 붉은 핏덩이의 형태로 굳어져버렸다. 그것을 터트리는 법도, 표출하는 법도 잊어버린 듯 하다. 나도 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만족해라.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그런 뻔한 말들은 이제 지겹다. 그게 안되니 미칠 노릇이라고. 그래서 나는 꿈을 꾼다. 입 밖으로 짜증을 꺼내 소리치는 꿈.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그런 대상이 무한한 꿈. 그저 악악. 나는 그렇게 돌고 돌아 천장이 무너질까 마음 조리게 된 것이다.
[기꺼이 먼지로]
최근 나는 그로부터 숨 쉴 구멍을 하나 찾게 되었다. 희한하게 그것은 지구를 벗어난 곳, 바로 우주이다. 워낙 SF영화 광인이라 우주는 흥미로운 주제거리이긴 했지만 그동안 파헤쳐보진 않았다. 내 정신을 반듯이 하고자 찾아봤던 뇌과학에서 나는 우주까지 범위를 넓혀버렸고 작은 구멍 하나를 겨우 뚫을 수 있었다. 광활한 우주, 수많은 행성들 중, 지구라는 행성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대구라는 도시에서, 집에 틀어 박혀 글을 쓰는 나라는 존재. 하루에 수만개의 별이 죽는데, 이 우주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것보다는 죽음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 우리는 그렇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수 많은 천체들 중, 우주에서도 고작 먼지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먼지가 아무리 쥐어 봤자 먼지의 티끌일 뿐인 것을. 나는 그 티끌을 하나를 쥐어보려고, 헤어지잔 말에 끝까지 옷거름을 잡고 놔주지 않았고, 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질긴 입씨름을 했고, 비릿한 돈 냄새를 맡으며 추월의 속도를 올렸고, 너무 만끽하면 사라질까 두려움에 떨었고, 피식 웃는 소리에 만가지의 상상을 했다. 좀 웃기다.
돌이켜보니,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건 다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야. 모든 걸 너무 사랑 하지마.”
그래 돌이켜보니, 나는 일도, 관계도 너무 사랑했다. 필사적으로, 애쓰며. 모든 것을 너무 꽉 쥐려하면 벗어나고, 기대하면 달아난다. 완벽 하려고 하면 불완전해지고 행복 하려고 하면 불행해진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그것을 망각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지켜내려, 내 안의 사랑은 깎이고 깎여 뾰족 해졌던 것이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나는 맏이로 태어나, 일생을 배에 태운 선원이 많은 선장의 삶을 살았다. 책임감이 남다르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은 어쩌면 이 생에서 임무 받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다만, 과도한 사랑의 폐해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이다. 매순간 아쉬움만 남는다. 그러니 만족이 안되고, 만족을 향해 달리기만 한다. 거기서 완벽이라는 지독한 사랑의 굴레에 갇혀 나를 갉아먹어 아파온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겠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애쓰면 악쓰게 되고, 악쓰면 애쓰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가 우주의 먼지가 하는 행위라니, 풉. 꽤나 허무하다. 나처럼 많은 것을 꽉 지고 있지만 도저히 놓을 방법을 모르겠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기꺼이 먼지가 되기를 자처하며 조금은 내려놓게 되기 때문이다. 갈망,우울,탐욕,비교,슬픔,분노,외로움과 같은 단어들 보다는 균형,적절함,만족함,평온함,안정감과 같은 단어들로 똘똘 뭉친 먼지로 말이다.
나는 아예 예비 남편에게 단단히 부탁을 해뒀다. 혹시 내가 쥐려고 하거나, 내려놓지 못할 때, 다시 또 그 지독한 사랑의 굴레에 빠진 것 같아 보일 때, 우주의 먼지라고 불러 달라고.
‘오빠..나..너무 스트레…’
‘이 우주의 먼지야..!’
우리 모두 사랑하기 위해 조금 덜 사랑해보자. 애쓰지 말고. 악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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