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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하지메는 아침에 연하게 끓인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하지메는 벌써 부엌에 있었다. 이부자리는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고 차림새도 말끔했다. 잠옷을 입은 채 푸석한 머리에, 침대 이불은 내가 빠져나온 형태 그대로인 나와는 무척이나 달랐다.
하지메는 줄곧 할머니와 같이 산 데다 부모님은 맞벌이였기 때문에 자기 일은 스스로 한다는 엄한 훈육 속에 자랐다.
내가 들어가면 부엌은 언제나 하지메가 끓이는 커피 향으로 그윽했다.
바닷가에서 바람에 짭짤한 냄새가 풍기는 것은 밤뿐이다. 아침에는 점차 기온이 오르는 메마른 공기에 오히려 마음이 빠릿해질 정도다. 그 하루가 얼마나 더 더워지든.
창밖으로는 엄마가 내다 넌 빨래가 강한 햇살과 바람 속에서 살랑거린다.
빨래가 보송보송 말라 간다. 사방에 충만한 새 아침의 멋진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구석구석 빛을 받으며, 좋은 냄새를 남기고 바짝 마른다.
하지메의 흉터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는 한층 선명하고 처참해 보였다. 나는 컵을 들고 커피를 받는다.
엄마가 구워 놓은 빵이나 어젯밤 먹고 남은 밥을 조금 먹으면서 우리는 말없이 커피를 마신다. 하지메는 갈색 설탕을 듬뿍 넣고, 나는 우유만 넣어서.
이렇다 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런 것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그 여름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른한 몸과 잠이 덜 깬 머리와, 햇살에 드러난 하지메의 흉터와 커피 향, 반짝거리는 빛 속에서 말라 가는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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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가 쓴 "바다의 뚜껑"이라는 소설의 일부를 발췌했다. 이 책은 어떤 시기의 내가 고민이 생길 때마다 펼치던 책이다. 고민을 해결할 힌트들이 이 책 안에 다 있었다. 이 책이 나랑 원래부터 닮았던 건지, 하도 좋아해서 닮아진 건지 등장인물의 면면들은 내가 되었다. 소설 속의 파랗고 선명한 여름이 훤히 그려진다. 주인공인 마리와 하지메가 그 여름 안에 살아 숨 쉬었다. 내 상상 속에선 이 이야기가 움직이니까 두 사람을 아끼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강한 문장이 없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부드럽게 읽힌다. 따뜻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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