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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순간은 영원이다. 영원이 순간이듯이.
백여 미터 앞에서 홍이가 나를 발견했다. 미간을 좁힌 채 내 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무수한 역사의 단편들을 보았다. 눈앞에서 방대한 역사의 퇴적들이, 그리고 역사의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순간의 연속들이 도미노처럼 나를 향해 밀려온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나와 홍이가 떨어져 지내 온 이 칠 년의 시간. (중략) 시간이 정지된 우주 공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우리 둘은 마주하고 있다. 위도 아래도 빛도 소리도 없으며, 거리도 높이도 없는 시공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다가오려 하는지, 멀어지려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의 파편이다. 원래는 하나였던 별의 파편. 중력에 끌려가며 다음 순간, 빅뱅의 예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파편.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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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상으로 그려지는 글을 좋아한다. 눈을 감고 그려본다. 그들은 내 안에 살아 숨쉰다. 내가 뱉은 호흡은 그들이 마시는 숨이 된다.

(2.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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