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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中)

누구든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꽂힌 글이 있다. 난 신형철의 글이다. 그중에서도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이 중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쁨보단 슬픔이, 즐거움보단 노여움이 오래 남는다. 때론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야속한 법칙이다.

그런 인간이 타인의 고통엔 무심하다. 그 세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외면하고 싶지만 불편한 사실이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평론이든. 문학은 타자의 감정을 이해하게 한다. 연대하게 만든다. 신형철의 글이 특히 그렇다. 대단한 자료와 수치를 넣지 않았는데 설득된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이 단단하다. 동시에 따뜻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하다고 하는 세상. 신자유주의자들의 약육강식 논리가 난무한 세계에 칼을 든다. 그 칼은 펜이다. 그리고 쓴다. 유약함은 패배가 아니라고. 깊이 있는 지식, 체계적인 논리, 따뜻한 시선. 이들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텍스트고 신형철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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