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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사랑해야 한다." 사랑을 쓴 로맹 가리는 사랑 없이 자살했다. 어느 날,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고 사랑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사랑을 하는데 왜 세계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을까.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주어진 생을 다 살지 못한 채 죽는 건 이상하다. 자의든 타의든.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 현상 이면에는 사랑의 부재가 존재하고 우리는 이를 제대로 보는 통찰을 가져야 한다.

자기애(自己愛): 자존에 대한 부재
그날은 덥고 짜증 나던 하루였다. 상사를 신명 나게 욕하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는데 애달픈 소식을 접했다. 내 또래의 청년이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봤다.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발견된 원룸 안에는 소주병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고인은 오랜 기간 실업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보도됐다.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마약을 하든 자해를 하든 자신의 신체를 파괴하는 자기 결정권은 개인의 권리라는 것. 그의 극단적 자유주의는 오늘날 자살을 합리화하는 논리로도 쓰인다. 그런데 자살은 자기결정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자살은 자존을 포기하는 행위다. 사랑의 첫걸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자아를 긍정하고 돌보는 자기애는 인간 삶에 중요한 기둥이다. 그 중요한 기둥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 자기애는 유지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랑은 사치로 다가온다. 매일 반복되는 투쟁 속에서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공허한 위로처럼 들린다.

지난 여름에는 고독사에 대한 뉴스가 많았다. 현장엔 돈 천원 하나 없었다고 한다. 주머니에 5만원 또는 다음 달 방값이라도 낼 돈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을텐데. 어느 고인의 옥탑방에는 쓰다 만 이력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냉장고는 비어있고, 밥을 먹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나는 그들의 죽음이 자꾸 생각난다. 돈을 꿔서라도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어보지. 편의점에 가보기라도 하지.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면. 아… 왜 그랬을까. 영양 과잉의 시대인데 왜 배고픔으로 죽었을까. 나의 어린 생각은 여기까지지만 그들은 더 이상 그런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여유가 없는 이 세계에서 자살은 온전한 자기결정이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자의가 아니었던 고독한 죽음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인류애(人類愛): 세계에 대한 부재
더 큰 문제는 자기애의 부재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애가 결핍된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결국 인류애의 결핍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너무 쉽게 무감각해진다. 서로를 향한 공감과 연대를 잃어가고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단적 개인주의는 무관심을 넘어 혐오와 배제를 양산하고 있다.
(두 문단 더 추가해야 함)

온전한 사랑의 실현: 나에서 우리로
로맹 가리는 "사랑해야 한다"고 썼지만 사랑 없이 떠났다. 그가 남긴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왜 사랑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사랑은 인간과 세계의 존엄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어 생명이 태어났다. 그러니 사랑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사랑이다. 자신을, 타인을, 더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다. 무수히 남아 있는 안타까운 죽음들을 위해 우리는 자존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8.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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