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초고2

너에게 편지를 남겨. 이건 다시없을 노래, 기억에서 사라질 이야기에 관한 거야. 가늠한 시간보다 더 오래전 너를 처음 만났어. 발견하게 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그날을 잘못된 처음이라고 말했지만 말이야. 발소리가 나지 않는 너는 늘 맨발이었고 나는 네 발이 꼭 시린 물속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내가 알지 못하는 너의 수많은 발자국에 대해 알고 싶어졌고, 그때부터 나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 되었어. 너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내렸고 그 시간의 침묵은 새벽을 덮을 만큼 고요했어. 까닭 모를 마음으로 가장 큰 잔을 골라 네 몫의 커피를 따르곤 했어. 나는 너를 안는 것을 참 좋아했어. 너를 안으면 네가 싣고 온 바람 냄새가 났고 거기에는 계산 없는 마음이 늘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거든. 내 손가락에 보라색 실 하나를 걸고서 내내 감상했어. 어느 날 따라간 실의 끝은 네 손 마디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이었어. 네 생활에 내 자리는 영영 없다고, 네가 다짐처럼 선언한 뒤부터 나는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가끔 거짓말을 엮었고, 너에 대해 오해하려 들었고, 지나치게 솔직하기도 했어. 어째서 너는 처음과 같은 눈으로만 나를 바라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이제는 알아. 너는 언제든 떠나야 하는 사람이지. 잃을 것은 없지만 지킬 것이 너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이지. 한 번도 나를 밀어내지도 가까이하지도 않았지. 내가 기다리던 시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네가 여기로 오던 너의 시간이기도 하지. 네가 많은 부분을 모른 체 한 덕분에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드디어 너에 대한 오독을 멈춘 거야. 내가 동경한 네 숲에는 아름다운 이끼가 무성한 초록이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신선한 공기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장면들이 가득하겠지. 오래 머물렀으면 해. 너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 네가 되어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으면 해. 부치지 않을 편지. 나는 문장으로 너를 토해냈어. 죽은 종이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4.9매)

1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