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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2

같이 사는 사람이 며칠째 끙끙댑니다. 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지만 심상치 않습니다. 가끔 집중할 때만 떨던 다리를 내내 발발 흔들어대서 시야가 어지럽습니다. 무릎에 두 앞다리를 올렸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내려가라고 합니다. 표정을 살피니 가관입니다.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뭔지 모를 때는 큰 소리를 내 흉통을 울리면 안정감이 드는데. 알려주고 싶어서 웡- 소리를 냈더니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저를 방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닫힌 문 앞 앉아 방 안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다리를 떠는 소리가 ‘파바바박’으로 진화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저도 불안해졌습니다. 마음이 더 흔들리지 않게 가슴을 쫙 펴고 자세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꼬리로 바닥을 천천히 훑으니 다시 심장이 천천히 뜁니다. 산책은 내일 가도 되니까, 바닥에 엎드려 눈을 붙입니다.
오늘은 온 집 창문과 방문을 열어 놓고 돌아다닙니다. 스피커로 크게 노래를 틀었습니다.

늘 혼자 사랑하고...혼자 이별하고..
나에게 사랑은...상처만을 주었지만...사랑은...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이제 다시...사랑 안 해.....

반려인은 텔레비전을 자주 봤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소파에 누워 함께 화면을 봤습니다. 반려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목청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20대 때 한창 연애를 해대던 반려인은 저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저런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요. 또 헤어진 걸까요. 몇 년이 흐르면서 궁상이 줄었기에 철이 들었나 했는데 오늘도 영 봐주기가 힘이 듭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손등을 살살 물었습니다. 반려인이 짜증을 냅니다. 그러더니 푸념을 합니다. 오랜만에 원고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에 대해 써야 하는데, 세련되게 쓰는 법을 모르겠다네요. 지가 세련된 사랑을 못 해봐서 그런가 봅니다. 차라리 제가 사랑에 대해 써보는 게 빠를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수행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응하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배우며 복종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인간도 그래요. 그 정도 지능으로 살아가는데 더한 지능을 발휘하려 용을 씁니다. 그걸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이 만나는 암컷이 몇 번 방문했었는데요, 반려인과 더불어 그들 중 서로가 필요 없는 데도 따르는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머리가 짧고 나무 냄새가 나던 사람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먹을 간식이나 새로운 장난감을 챙겨오곤 했거든요. 오랜만에 왔길래 반가워서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인형을 입에 물려주고는 제 귀에 속삭거렸습니다.
“저 새끼는 됐고, 너랑 못 봐서 아쉽네.”
머리카락이 구불구불 길고 코가 따갑게 향이 많이 나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한창 글 쓴다고 바쁜 주인이 방에 들어가면 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너희 주인이 부러워. 돈이 많나 봐. 너같이 멋진 강아지도 키우고. 나는 돈도 없지만 용기도 없어서 강아지를 못 키워.
아무래도 인간은, 인간 암컷은, 인간 수컷보다 강아지를 좋아하나 보다 생각한 나날이었습니다.

(7.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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