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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3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상담을 상담 선생님에게 하기엔 왠지 쑥스러웠다. 검정색 1인 소파에 걸터앉아, 이 손으로 저 손 검지를 쥐었다 놨다 하며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요. 한 달 정도 됐는데요. 멀리 있어요.
피할 수 없었다. 잘 아는 사람 중에서는 연애 상담할 곳이 없었다. 서른 중반을 지나 보내는 우리 중 대부분은 연애 관계를 오래 이어왔거나 결혼을 해치웠다. 연애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말은 ‘좋을 때다, 부럽다, 결혼하지 마라’ 였다. 가끔 앵무새처럼 되 말하고 싶었다. 좋을 때다, 부럽다, 결혼하고 싶다, 혹은 결혼 물러라.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입안에서 공글리는 말이 많아지는 동안 고민의 무게를 달았다. 남편이 돈은 잘 벌지만, 건강도 육아도 뒷전. 고민.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미래 이야기만 하면 회피. 고민. 남들이 내놓는 고민을 저울에 놓고 중량을 달다 보면 이런 말들은 꼴깍 삼키고 만다. 벌써 좋아지고 말았는데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해, 표현을 잘 안 해서 좋은지 싫은지 잘 모르겠어, 미래를 그려야 할지 불안해, 금방 흩어질 것 같은 문장을 하나씩 떠올리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이유를 찾았다. 마음대로 할 거니깐. 연애는 그러는 거다. 친구들도 그래 왔으니 해줄 말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내가 결혼했다면 그렇게 답하진 않았을 텐데. 학창시절부터 20대까지 신명 나게 이성 이야기를 해온 친구들이다. 이사할 때 내놓는 상자처럼 주제를 닫아버렸다. 취급 주의 스티커 위에 ‘버릴 거’라 써 갈겨서 말이다.
워낙 버리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여전히 매만지다 보니 다음에 쥐어야 할 것을 주변에 두지 못했을까.
(상담에서 연애이야기가 나온 이유 추가, 결핍, 애착...)
결혼을 안 했다기엔 못한 거 같고, 못했다기엔 하기 싫었다. 딱히 어른과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가족과 알고 지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연애에서는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넉살 좋게 고봉밥을 퍼먹은 적도 있다. 친구들만 각자 베프가 생기고 나만 없는 기분이 들 땐 누구든 만나 하면 그만일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가 결혼을 이야기하니 아니꼬운 것이다.
(상담에서 사람들은 사랑 받고 싶은 걸 사랑한다고 착각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애인과 나누는 장면 추가, 전에 어떤 내용을 추가할지 고민)
오랜만에 눈이 왔다.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건 왜 어려울까.”
질문은 아니었다. 새삼스러움이었다.
“무섭잖아.”
어떻게 알았지. 받고 싶다는 말이 입에 어른거릴 때 튀어나온 말은 ‘무서워’였다. 무섭다고 웅얼거리며 혼자 눈물을 훔쳤다. 그 무서운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니 다행이었다. 이내 알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져 모른 척 되물었다.
“왜 무서운데?”
“하는 건 내가 하는 거지만, 받는 건 남이 해줘야 하는 거잖아.”
(혼자 유지하는 일상 나열, 만 34세로 연장된 워킹홀리데이 공고를 보다 애인에게 넌지시 말하다 어릴 때야 가고 싶었다고 얼버무리고, 연말 친구들과 만남, 결혼한다는 친구와 갑작스러운 발표에 서운해 하는 친구들, 몇 살까지 결혼 안하면 oo도 축의금 주자. 40? 너무 가까운가? 50? 웃으며 대화, 집에 돌아와 독백, 워홀 지원서를 다운받고 관계가 어떻게 될지, 친구들과 어떻게 더 달라질지 상상하며 고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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